 
▲ '돌아온 아들 이야기' 그림에 대해 설명하는 김의중 작전동감리교회 목사.
▲ 김의중作 '기도하는 예수".
"40년이 넘는 목회생활동안 큰 일 없이 마무리할 수 있어서 감사하구요. 그냥 좋아서 그리기 시작한 예수님 그림을 모아 전시회를 가질 수 있는 것도 주위의 많은 분들이 격려와 성원을 해주신 덕분입니다."
47년간의 목회 생활을 마치고 오는 4월 은퇴식을 갖는 작전동감리교회 김의중 목사가 그동안 틈틈이 그려온 '예수 성화(聖畵)' 50여점을 '평화 예수'란 주제로 오는 14일부터 다음달 24일까지 온누리감리교회(계양구 용종동) 스페로갤러리에서 전시회를 연다.
"이번에 전시되는 성화는 제가 청년시절이었던 1966년부터 2년 동안 서울서 교회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며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수채화로 그린 그림하고 이후 목회생활을 하며 최근까지 묵화로 그린 여러 모습의 예수님 성화와 제 삶의 고백이며 선교를 염원하는 마음에서 현대적 감각으로 그린 '돌아온 아들 이야기' 시리즈와 성화 소품들이 전시돼요. '돌아온 아들 이야기'는 그림집으로 출판됐고 전도지로도 만들어져 국내는 물론 외국에서도 사용하고 있어요."
김 목사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중학교 다닐 때부터였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영어, 수학은 어려워서 잘 못했고 국어와 역사를 좋아했는데 그림을 그리는 미술시간을 가장 재미있고 즐거워했다.
"제가 미술에 소질이 있거나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았어요. 그저 어릴 때부터 예수님이 좋아 예수님을 그리기 시작했고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되고 싶어 그렸어요. 근데 워낙 재주가 부족하다보니 처음에는 뜻대로 그려지지 않아서 속이 상하기도 했지만 방법이 없잖아요. 끊임없이 쉬지 않고 그리고 또 그리다보니 조금씩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구요.
인천 강화도 내가면 출신인 김 목사는 내가초등학교, 인천남중학교, 선인고등학교를 나와 대전에 있는 감리신학대학를 졸업하고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어릴 때부터 월북을 했다는 이유로 공산주의자로 몰린 아버지 때문에 온 가족이 갖은 고초와 핍박을 받은 기억이 있어요. 그때도 물론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어머니께서 목사가 되라는 권유도 하셨고 저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목회자가 되기로 마음 먹었죠."
김 목사는 1971년 경기도 안성의 공도감리교회에서 첫 목회를 시작한 뒤 1973년부터 5년 동안 인천의 귤현교회에서 비교적 평안하고 안정된 목회 생활을 보냈지만 1977년부터 현재의 작전동교회에서 그의 말대로 '고난의 언덕을 넘는' 목회를 40년간 이어왔다.
"지금도 까치마을로 불리는 이곳은 당시에는 집도 몇 채 없었고 전부 논과 밭이었죠. 근처에는 부평공단이 막 조성되고 있어서 공장들뿐이었어요. 그래서 근로자들을 위한 목회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김근태, 인재근 의원 등과 함께 '도시산업선교회' 활동을 했지요. 그 때 인연이 된 근로자들이 결혼해서 자식들을 낳고 또 손자들을 봐서 3대가 함께 손잡고 교회에 다니는 분들이 많아요."
김 목사는 중국의 조선족과 장애인들의 복지에도 눈을 돌려 25년 전부터 '중국복지후원회'를 만들어 1994년에는 중국 길림성(吉林省) 연길(延吉)에 장애인 재활복지관을 건립했고 2000년에는 백두산 근교 안도현(安圖縣)에 종합사회복지원도 운영하고 있다.
"제 아호가 장강(長江)이에요. 중학생 때 한학을 하시던 선생님이 지어주셨는데 처음엔 그냥 긴강이라 생각하고 한가지 일을 오래 하라는 뜻으로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장강이 양자강(揚子江)의 본래 이름이잖아요. 중국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된 게 그때부터 이미 운명처럼 정해져 있었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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