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두어 차례 만난 뒤 파티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의 모임에 저를 동반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문학을 공부했다는 말에 제가 문학이나 예술에 관해 좀 아는 체 했더니 저를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 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더군요. 중고등학교 다닐 때 암기 위주로 공부했던 주입식 교육의 덕을 본 셈이랄까요. 작품을 완독하지는 않았어도 유명한 소설가와 작품 이름은 다 외우고 있었고, 감상은 제대로 못했어도 '세계 3대 교향곡'이나 '베토벤 3대 교향곡' 등의 이름은 줄줄이 꿰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파티라는 게 처음이라 옷차림은 어찌해야 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물어보았더니 편한 차림으로 오라고 하더군요. 파티 장소는 그녀 친구가 세들어 사는 조그맣고 허름한 아파트 방이었습니다. 음식이라곤 각자 가져온 햄버거와 피자 그리고 음료수뿐이었고요. 밴드가 있는 그럴싸한 레스토랑에서 무슨 춤을 어떻게 출지 머리를 굴리다 갔는데 엄청 실망했지요.
모인 사람은 7-8명으로 연극을 한다는 여자, 노래를 부른다는 남자, 사진을 찍는다는 남자 등 다양한 분야의 아마추어 예술가들이었습니다. 처음엔 그들 모두 동양에서 온 남자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돌아가며 이것저것 캐묻다가 자기들끼리 얘기하는데, 그들의 얘기를 잘 알아듣지 못하니 끼어들기 어려웠습니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로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한 친구가 조그만 종이에 담배를 말아 몇 모금 빨더니 옆 친구에게 건네더군요. 두어 모금씩 쭉 한 바퀴를 돌아 저에게도 왔습니다. 그녀가 마리화나라면서 한 번 피워보겠느냐고 묻더군요. 초등학교 4학년 때 호기심으로 피워본 담배 한 모금을 연상하며 주저 없이 받아 들었습니다. 연기를 내뿜지 말고 쭈욱 들이키라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지만, 은근히 겁이 나서 내뱉었더니 아무렇지도 않더군요. 그러나 몇 몇 친구는 술에 취한 것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 이 글은 [이재봉의 평화세상] (blog.daum.net/pbpm21)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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