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때 키도 크고 힘도 셌지만 한쪽 팔을 쓰지 못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공부도 잘하는 편이어서 저와 나란히 1, 2등을 했지요.
가장 친한 사이였는데 어느 날 사소한 시비 끝에 교실에서 싸우다 그 녀석의 커다란 주먹에 입술이 터져 바로 병원으로 실려가 대여섯 바늘을 꿰매는 생애 '첫 수술'을 받았습니다.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흔적이 조금 남아있는데, 한손잡이에게도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쌈질에 소질이 없었다는 뜻이지요.
2년 뒤 고등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키는 저보다 조금 작았지만 팔씨름은 반에서 1등을 하던 친구와 교실에서 시비가 붙었는데 제가 먼저 한 대 쳤더니 그는 얼굴이 벌개져 싱겁게 자리에 앉고 말더군요.
우쭐했지요.
그런데 수업이 끝난 뒤 그 녀석이 다가와 조용히 건네는 말에 섬뜩해졌습니다. "내 주먹 한 방이면 니를 날려보낼 수 있지만 회장이니까 참는다.
힘으로 하면 니는 내 반쪽 상대도 안돼 임마." 제가 덩치도 작고 지도력이나 친화력 같은 기질도 부족했지만 성적만으로 회장으로 뽑힌 터였거든요. 공부 좀 한답시고 까불며 깝죽거리던 제가 얼마나 아니꼽고 같잖아 보였을까요? 암튼 저는 그 말을 듣고 움찔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