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엄청난 외로움과 조그만 효도를 핑계로 '번개 결혼'을 했다고 했는데, 이와 관련하여 2002년 1년 동안 뉴욕주립대학에 방문교수로 있으면서 동양사상에 관해 강의할 때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미국인 학생들에게 유교의 효에 관해 설명하면서, '효'는 부모의 조건 없는 사랑과 무한한 희생에 대해 자식이 조금이라도 되갚는 것이라고 정의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재미있고 쉽게 알려주고 싶어 제 결혼 과정을 얘기했지요. '막둥이 손주'를 보고 싶다는 노부모의 소원을 풀어드리기 위해 처음 만나 선보고, 두 번째 만나 약혼하고, 세 번째 만나 결혼했다고요.
'효'를 강조하기 위해 외로움이 더 큰 이유였다는 것은 생략한 채, 난 공부를 마치고 결혼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을 위해 속도전을 폈노라고 얘기하는데, 거의 백인들인 80명 안팎의 수강생들 가운데 한 남학생이 번쩍 손을 들더군요. "Are you still married?" 아직 이혼하지 않고 잘 살고 있느냐는 질문이었지요.
글쎄요, 미국에서는 사랑이 뜨거워지면 결혼하고 식으면 이혼을 하는지 무슨 신청서나 신원진술서 등에 결혼을 몇 번 했느냐는 문항이 있을 정도로 이혼이 흔한 모양입니다.
따라서 이혼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굳이 감추지 않는 경향 탓인지 사이좋은 의붓형을 바로 옆에 두고 소개하면서 "This is my half-brother"라고 말하는 것을 듣기도 했습니다. 우리 같으면 굳이 '배다른 형'이라고 밝히겠어요?
미국이 '사랑'의 문화라면 우리는 '정'의 문화라고 할 수 있겠지요. 맞선을 통하거나 심지어 얼굴도 모른 채 사랑을 속삭일 틈도 없이 결혼을 하고, 살아가면서 정을 쌓고, 곱든 밉든 정이 들면 서로를 '웬수'라고 여기면서도 같이 살고, 정이 떨어져도 자식들이나 체면 때문에 헤어지지 못하고, 설사 이혼하더라도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 재혼하지 못한 게 우리의 전통이고 문화였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우리 문화도 급속도로 크게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한의 젊은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남한보다 전통을 더욱 중시하고 서구 문화에 훨씬 폐쇄적인 북한에서도 중매결혼보다 연애결혼이 흔해져서 1990년대 말 저의 '번개결혼' 얘기를 들은 평양 사람들도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짓더군요.
나아가 1990년대 초엔 [이혼 또 하나의 선택]이라는 책이 나오고 최근엔 "아흔 아홉 번 이혼 도장 찍은 여자"의 책이 자랑스럽게 나오는 등 우리 사회에서도 이혼이 어렵지 않게 이루어지고 나아가 이혼율이 세계 최고를 기록한다는 말까지 듣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미국을 비롯한 서양 문화에 영향 받아 이혼을 보편적 현상으로 받아들인다면, 서양인들처럼 원수 지지 않고 '비폭력적으로' 헤어지고 이혼 후에도 '평화적으로' 지내는 방법까지 좀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