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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벼룩시장의 반갑고 큰 고객: 순한 멕시코계 미국인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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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10-06-14 16:27
조회 : 4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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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멕시코계 미국인들이었습니다. 텍사스나 캘리포니아 등 미국의 남서부지역 주민들의 다수가 멕시코 출신을 비롯한 히스패닉 (Hispanic: 라틴 아메리카계 주민)이니까요.
참고로, 남서부 지역은 1847-48년 미국이 멕시코를 침략하여 빼앗은 땅입니다. 이 때 멕시코는 국토의 절반 이상을 빼앗기고 말았는데, 그 뒤 텍사스와 캘리포니아 등 미국에 빼앗긴 땅에서 엄청난 석유와 금광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지켜본 멕시코인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그리고 텍사스 서쪽 옆에 있는 주의 이름이 뉴멕시코인데, 세상에 멕시코로부터 빼앗은 땅에 '새 멕시코'라는 이름을 붙였으니 미국인들도 참 잔인하지요. 영국에서 건너와 매사추세츠 등 동북부지역에 정착하면서 그곳 이름을 '뉴잉글랜드 (새 영국)'라고 지은 것은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그 무렵 멕시코에 대한 미국의 반복적인 군사개입과 경제침략 그리고 인종차별과 문화침투 등을 통해 멕시코인들은 '악성적이고 병적일' 정도의 반미감정 또는 '양키 혐오증 (Yankeephobia)'을 가지게 되었지요.
얘기가 조금 딴 방향으로 흘렀는데, 많은 한국인 동포나 유학생들은 멕시코인들을 '멕작'이라고 얕잡아 불렀습니다만, 벼룩시장 장사꾼인 저에겐 가장 반갑고 큰 고객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백인들은 3달러짜리 플라스틱 시계를 하나 사면서도 품질보증을 해주는지, 방수가 되는지, 수표를 받는지 등 꼬치꼬치 캐물으며 까다롭게 굴었지만, 흑인들이나 멕시코인들은 40-50달러짜리 롤렉스 가짜 명품도 주저 없이 샀거든요. 그래서 영어에 서투른 멕시코계 손님들을 상대로 돈을 벌기 위해 장사에 필요한 스페인어 몇 마디를 배우기도 했지요.
한편, 텍사스의 흑인들은 뉴욕의 흑인들에 비해 너무 순했습니다. 북부와 남부의 차이이기도 하고 도시와 농촌의 차이이기도 했겠지요. 멕시코인들도 참 순했고요. 언젠가 제 자동차가 고장났는데 이웃에 사는 멕시코인이 잘 고친다기에 수리비를 아끼려고 그에게 맡기기로 했습니다. 부품값을 먼저 건넸는데 며칠이 지나도 고쳐주지 않아서 몇 차례 독촉하다 화를 냈더니 갑자기 주머니에서 잭나이프를 꺼내 저를 위협하더군요.
제가 비쩍 말랐어도 깡다구는 좀 있어서 전혀 당황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웃으면서, "헤이, 나 뉴욕에서 왔어"라고 한 마디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슬그머니 칼을 집어넣고 이틀만 기다려달라더군요. 그리고 이틀 뒤 차를 고쳐왔습니다. '뉴욕 출신'이라는 말 한 마디가 잭나이프를 물리친 셈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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