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모가지 내걸어놓고 일해야 했습니다. 앞에서 이미 밝힌 대로 가게가 워낙 험한 동네에 자리 잡고 있어 방탄유리 안에서 물건을 팔았지만, 한 순간도 긴장을 풀기 어려웠지요.
당연히 주인은 가게 안에 엽총 (shotgun)을 비치해놓을 수 있는 면허를 갖고 있었습니다. 조그만 권총도 하나 마련했습니다. 동네 청년이 어디서 훔친 것을 가게에 가져와 조르는 바람에 헐값에 샀지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주인이 현금을 몸에 지니고 퇴근하는 게 너무 위험하다며 권총을 차에 갖고 다녔는데, 불법으로 산 총을 불법으로 가지고 다닌 셈이었습니다. 가게 안의 엽총은 합법일지라도 차 안의 권총은 불법이었다는 말이지요.
어느 날 제가 운전 연습을 할 겸 주인을 옆자리에 앉히고 그의 차를 몰고 퇴근하는데 경찰차가 좇아와 세웠습니다. 제가 뭘 잘못했느냐고 묻자 대답은 하지 않고 둘 다 내리라고 하더니 차를 뒤지더군요. 곧 권총을 찾아내고 바로 수갑을 채워 경찰서로 데려 갔습니다. 권총을 판 청년이나 그의 친구인 점원이 신고했던 모양입니다.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다음날 아침 주인의 변호사를 통해 벌금을 내고 풀려났습니다. 유학생 신분으로 비록 하룻밤이나마 미국의 유치장 생활까지 맛본 것이지요. 8년 전인 1975년 서울에서 재수할 때는, 작년에 [싸움꾼에서 비폭력주의자로]라는 연재를 통해 밝혔듯이, 주먹 한 방 휘두르고 폭행죄로 종로경찰서 유치장과 서대문 감옥에서 한 달을 보낸 쓰라린 경험을 했는데 말입니다.
공부고 일이고 당장 집어치우고 싶었습니다. '환상의 도시'로 여겼던 뉴욕은 정나미가 뚝 떨어지는 곳이 되고 말았지요. 숙식을 제공하며 학비를 보조해주는 형이 있고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훤칠한 키와 파란 눈의 연인이 있었지만, 뉴욕시를 떠나고 싶다는 마음은 날이 갈수록 굳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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