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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꾼에서 비폭력주의자로(23) |
글쓴이 :
날짜 : 09-11-06 15:17
조회 : 3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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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하와이대학교에서 박사 학위 논문을 쓸 때 큰아들은 4살이었습니다.제가 밤낮을 거꾸로 살며 논문을 썼는데 아이도 저를 따라 밤늦게 잠자리에 들고 싶어 했습니다.
하루는 일찍 자라고 하자 아빠는 일찍 안 자면서 왜 자기만 일찍 자라고 하느냐고 대꾸하더군요. 아빠는 공부하느라고 늦게 잔다고 하자 그럼 자기도 공부하겠다며 소파에 앉아 책 한 권을 거꾸로 붙잡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그 때 글을 읽지 못했거든요. 그 모습에 킥킥거리며 다음과 같이 생각했습니다.
‘내가 책만 붙들고 있으니 아이들도 책을 장난감 삼아 놀며 책읽는 시늉을 내는구나. 맞아, 가정 환경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야.앞으로도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은 조금도 필요 없어.내가 항상 공부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으면 저절로 따라할 테니까.’
그로부터 3-4년 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둘이 경쟁하듯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엄마가 책방에 가서 동화책이든 위인전이든 사오는 대로 다 읽었지요. 책 한 권 끝낼 때마다 엄마가 100원씩인가 상금을 준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턴가 두 녀석 다 책과 마치 원수라도 진 것처럼 멀리 하기 시작하더군요. 저는 아이들 앞에서 꾸준히 책읽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도 말입니다.
아이들이 ‘아빠는 어른이고 교수인데도 저렇게 책을 열심히 보니 학생인 우리는 더 열심히 읽어야지’라는 생각을 갖기를 기대했었지만, 아내는 식탁에서든 화장실에서든 책만 붙잡고 있는 아빠에게 아이들이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고 진절머리가 나서 그런 것 같다고 진단하더군요.
제가 책만 붙잡고 있는 것이 아이들에겐 ‘모범’이 되기보다 스트레스를 주기 쉽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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