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비폭력정치학과 평화학을 공부하면서 느낀 점 가운데 하나는 우리 사회에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줄이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의 하나로 ‘집안일 함께 하기 (가사 분담)’를 실천에 옮기기로 했습니다. 집안에서는 청소와 설거지를 맡고, 밖에서는 아내와 함께 장보기를 했지요. 이 가운데 설거지는 제 ‘전공 분야’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요리는 솜씨가 부족해 지금도 잘 할 수 없지만, 설거지는 특별한 기술 없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거든요.
아이들이 어릴 때 설거지를 시키기는 어려웠지만 자신들이 사용한 수저와 밥그릇 등은 식탁에서 설거지통까지 각자 나르도록 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친구들을 자주 집에 데려왔는데 그 ‘손님’들에게도 따라 하도록 하면서 자기들 집에 돌아가서도 그렇게 하라고 일렀고요. 제가 설거지를 담당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떳떳하게 시킬 수 있었지요.
두 아들이 크면 아빠를 따라 설거지를 조금이라도 해주리라 기대했는데 고등학생이 되도록 수저와 밥그릇을 설거지통까지 나르기만 하지 설거지를 직접 할 생각은 갖지 않더군요. 몇 차례 점잖게 부탁해보았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할 수 없이 큰아들을 부엌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제가 비누칠을 하고 아이에게 헹구도록 했지요. 다음날은 아이에게 비누칠을 하도록 하고 제가 헹구었습니다. 셋쨋날과 넷쨋날엔 작은아들은 부엌으로 끌어들여 그렇게 교대로 설거지를 해봤습니다. 그리고 닷새째 두 아들을 불러놓고 말했습니다. “앞으로는 아빠가 집에 없더라도 너희 둘이 설거지를 해봐라. 엄마가 너희들 때문에 고생하는데 설거지 정도는 너희들이 도와줄 수 있지 않겠니? 둘이 비누칠과 헹굼질을 나눠서 하든지 각자 하루나 일주일씩 당번을 정해서 하든지 설거지는 너희들이 맡아봐라.”
며칠 뒤 집에서 피자를 먹을 때였습니다. 작은아들이 식구 숫자대로 접시 4개를 꺼내오자 큰아들이 소리치더군요. “야, 접시가 왜 필요하냐? 그냥 손에 들고 먹으면 되지.” 물이나 쥬스를 마실 때마다 새 컵을 쓰던 녀석이 직접 설거지를 해보더니 이렇게 접시를 사용하는 것조차 자제하는 게 재미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