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대학에서 첫 학기를 무사히 보내고 1992년 1월 두 번째 학기를 맞아 우선 요한 갈퉁 (Johan Galtung) 교수의 ‘갈등 해결’이란 수업을 신청했습니다. 과목 이름이나 수업 주제 등엔 관심이나 흥미가 거의 없었지만 담당 교수의 명성 때문이었습니다.
첫 학기에 ‘비폭력 정치학’ 수업을 생소한 과목 이름 때문에 신청했다면, ‘갈등 해결’ 수업은 유명한 교수 이름 때문에 듣고 싶었던 것이지요.
제가 갈퉁 교수의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1981년 대학 3학년 때 ‘제 3세계와 종속이론’에 관한 책을 통해서였습니다. 서울의 대학가에서 데모 없는 날을 손꼽을 정도였던 1980년대 초 정치외교학과 학생회장을 맡고 있으면서도 데모에 앞장서기는커녕 맨 뒷줄에라도 한 번 서보지 못한 부끄러운 과거를 지니고 있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만, 이른바 운동권 친구들을 통해 ‘제 3세계와 종속이론’에 관해 귀동냥 정도는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호기심을 달랠 겸 그에 관해 정치외교학과 학술제를 준비하는데, 정치외교학과 교수이던 법정대학장이 ‘제 3세계’에 관한 논문발표나 토론은 좋지만 ‘종속이론’에 관해서는 허락할 수 없다더군요.
간단히 말해 제 1세계는 미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선진 자본주의 진영을, 제 2세계는 소련과 동유럽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진영을, 제 3세계는 정치적으로 양 진영에 속하지 않으며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나라들을 가리켰습니다. 그리고 종속이론은 제 3세계 또는 개발도상국들이 제 1세계 또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 종속되어 있는 한 진정한 발전을 이룰 수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따라서 종속이론은 미국에 대한 비판을 이끌 수 있기 때문에 대학에서조차 다루지 못하게 했던 것인데, 1980년대 우리나라의 서글픈 현실이었지요.
그러한 종속이론을 조금 공부하며 어렴풋이 이름을 알게 된 갈퉁 교수를 10여년 뒤 하와이대학에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는 워낙 유명한 탓인지 유럽과 미국의 3-4개 대학에 동시에 적을 두고 봄 학기에만 하와이에서 강의를 했는데, 그 때문에 수강생이 20여명이나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무렵 하와이대학 정치학과엔 교수가 30명이 넘었고 대학원 수업은 대개 5-6명의 수강생들로 이루어졌는데 말입니다.
갈퉁 교수의 강의를 처음 들으면서 엄청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노르웨이 출신으로 10여개 언어를 구사한다는 그의 영어를 거의 절반 밖에 알아듣지 못했거든요. 이미 미국 생활을 6-7년 한 터였으니 아직도 귀가 뻥 뚫리지 않는 자신이 한탄스럽기도 하고 그의 까다로운 유럽식 영어 발음이 원망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는 숙제를 내주며 다음 주 수업 전날까지 자신의 연구실로 제출하라고 했는데, 일주일 뒤 수업 당일 숙제를 냈더니 늦었다고 받지 않더군요.
그리고 지난 주 수업 시간에 왜 필기를 하지 않았느냐고 묻기에, 나는 무슨 수업에서든 필기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더니, ‘뭐 이런 놈이 있느냐’는 식으로 째려보다가 아무래도 자기 강의를 따라오지 못할 것 같다며 수강 신청을 취소하라고 명령하듯 말했습니다. 학기 초부터 ‘문제 학생’으로 찍힌 것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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