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하와이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커다란 행운이었습니다. 마이클 하아스 (Michael Haas), 글렌 페이지 (Glenn Paige), 요한 갈퉁 (Johan Galtung) 등 세계적으로 쟁쟁한 교수들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으며 박사 학위 과정을 마친 것은 제 공부 인생에서 가장 값진 일이었지요.
먼저 하아스교수와의 인연을 소개하자면, 하와이대학에 등록하자마자 그를 찾아갔습니다. 텍사스에서 석사 논문을 끝낼 무렵 도서관에서 한반도 통일에 관한 신간을 접했는데 그가 1989년 편집한 책이었거든요. 그 책 서문에 대강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있었습니다.
“1970년대 말 한국을 방문하여 ‘하와이 마피아 (Hawaii mafia)라는 말을 처음으로 들었다. 미국의 대학들 가운데 하와이대학이 가장 많은 한국인 정치학박사를 배출했는데, 이들이 ‘하와이 마피아’로 불리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을 내가 지도했으니 마피아의 ‘대부 (godfather)’ 역할을 한 셈이다.”
지금은 ‘패거리’에 대해 몹시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지만, 당시엔 저도 패거리에 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일류’나 ‘명문’ 학교에 다녀보지 못한 저로서는 대학원에서나마 다수를 이루는 집단에 속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하와이대학에 발을 디딘 첫날 하아스 교수를 찾아가 저를 소개하며 “나도 하와이 마피아의 일원이 되고 싶다”고 말했지요.
그는 저를 몹시 아끼고 사랑해주었습니다. 종합시험을 며칠 앞둔 날 그를 찾아가 시험 연기를 요청했습니다. 공부를 덜 했다며 책 몇 권 더 읽고 싶다고 하자 “너처럼 공부 열심히 한 학생이 자신이 없다면 누가 자신을 갖겠느냐”면서 예정대로 시험을 보라더군요. 오히려 책은 더 이상 읽지 말고 해변에 나가 쉬거나 영화라도 한 편 보면서 공부한 것을 정리하라는 격려와 충고를 덧붙이면서 말입니다.
논문 심사를 마친 날엔 저에게 저녁을 사주며 축하해주었습니다. 논문 심사를 받으면 교수들에게 흔히 ‘거마비'명목으로 적지 않은 심사비를 건네며 커다란 향응까지 몇 차례 베풀어야 하는 한국 대학원의 전통이나 문화에 매우 부정적 생각을 갖게 된 배경 가운데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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