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아이가 태어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1990년 초 아내가 둘째 아이를 가졌습니다. 출산 계획이 없던 터에 피임약까지 먹는 중이었으니 참 난감해지더군요. 돈을 벌며 공부하는 처지에 연년생으로 아이를 갖는다는 게 부담스러웠고, 첫째 아이가 '덜반'으로 태어났는데 둘째 아이는 기형아로 태어날지 모른다는 게 두려웠습니다.
피임약을 포함한 무슨 약을 먹다 임신하면 기형아가 태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그럴 경우 한국에선 주저 없이 낙태해버린다는 얘기도 자주 들었고요.
저희 부부의 고민을 들은 산부인과 의사는 무척 친절했습니다. 약물을 복용하다 임신하면 기형아를 출산한다는 말이 있지만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라면서 우리의 오해와 두려움을 없애주려고 노력하더군요. 낙태보다는 출산을 권하며, 심리과 의사와의 상담을 주선하기도 했습니다.
심리과 의사는 먼저 약물 복용과 기형아 출산 사이에 관계가 거의 없다는 통계 자료를 보여주었습니다. 만에 하나 잘못된 아이를 낳아 기를 자신이 없다면 미국에서는 그 아이를 데려다 키워줄 사람이나 기관이 적지 않다는 말까지 덧붙이더군요.
그 말에 아내나 저나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었습니다. 둘이 손을 꼬옥 잡았습니다. 남이 낳은 기형아도 길러줄 사람이 많다는데 우리가 낳은 자식도 키우지 못하겠느냐는 생각을 가진 것이죠.
지금이야 낙태를 '살인에 준하는 끔찍한 범죄 행위'로 인식하지만, 그 때는 제가 평화학이나 평화운동도 전혀 몰랐고 생명이나 인권 등의 문제에도 관심을 갖지 못해 낙태에 대한 죄의식이 거의 없었는데, 의사들의 친절하고 올바른 충고에 출산을 결정했던 것입니다.
예정대로 10월 말 아이를 낳았습니다. 멀쩡한 아들이었습니다. 백일이 지나고 돌이 지나도록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이리 살펴보고 저리 뜯어봐도 잘못된 데라곤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세상 구경도 해보기 전에 목숨을 잃을 뻔했던 그 둘째 아들이 이젠 앞에 소개한 큰아들과 함께 죠지아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중학교 다닐 때는 형처럼 농구선수로 활약하고, 고등학생 때는 학원강사 노릇도 하다가, 대학에서는 형과 같이 장학금 받으며 공부하고 있지요.
아무 이상 없이 태어나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기대 이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는 둘째 아들을 지켜보며, 지난날 잠시나마 '살인의 유혹'에 빠질 뻔했던 자신에게 쓴웃음을 짓곤 합니다. 그리고 1990년 텍사스에서 만났던 산부인과 의사와 심리과 의사 같은 훌륭한 의사들을 이제는 한국에서도 많이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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