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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덜반"의 아들과 병원의 자선가
  글쓴이 :      날짜 : 10-08-12 14:12     조회 : 3592    

어머님이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 귀국한 지 꼭 1년만인 1988년 11월 미국 땅을 다시 밟았습니다.

아내는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임신을 했습니다. 막내며느리로서 홀로 된 시아버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 한편 '막둥이 손주'를 빨리 보라는 독촉도 적지 않게 받았었지요.

1989년 1월 학교에 다시 등록했는데, 4월 중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아내에게 타이핑을 부탁했습니다. 얼마 전부터 보급되기 시작한 개인용 컴퓨터(PC)를 막 장만하여 이것저것 배울 때였는데, 아내의 타이핑 솜씨가 좋아 제가 종이에 글을 갈겨놓으면 아내가 타이핑을 해주었지요.

그런데 배가 불룩 나온 아내가 밤늦게까지 타이핑을 하다 탈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양수가 터져버렸지요. 급히 병원으로 옮겼는데 온종일 낑낑거리다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이가 예정보다 3주 쯤 일찍 나왔으니 '여덟달 반'만에 태어난 '모자란' 사람을 가리키는 이른바 '덜반'이었지요.

그래서 태어나자마자 열흘 정도 보육기 (인큐베이터) 신세를 졌습니다. 보육기에서 나온 뒤에도, 심장에 문제가 있고 귀에 이상이 생기는 등 여러모로 잘못 태어난 아이처럼 생각될 정도였고요.

병원비도 걱정이었습니다. 하루에 몇 백 달러로 그 무렵 한 달 집세와 생활비 수준이었거든요. 아무튼 아내와 아들이 퇴원할 때까지 병원비는 몇 만 달러가 되었습니다. 병원 측에 아무런 보험도 없는 가난한 유학생이 어떻게 해야겠느냐고 하소연했더니 걱정마라더군요. 저 같이 딱한 사람들을 위해 병원마다 자선가들을 확보하고 있다면서요.

수천만원의 병원비를 상담을 통해 공개적으로 떼먹고 퇴원했으니 미국이 진짜 살기 좋은 나라라는 것을 제대로 실감했습니다. 아들은 그 뒤로도 2년 정도 거의 매주 병원을 들락거렸는데 그 때도 병원비는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액수가 부담스러우면 한 달에 몇 십달러씩 할부로 낼 수 있었으니까요. 제가 이렇게 미국 사회에 어마어마한 빚을 졌는데,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친미주의자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참고로 그 '덜반' 아들은 텍사스-하와이-경상도-전라도-플로리다-뉴욕을 거쳐 지금 죠지아에 살고 있는데 어릴 때와는 달리 멀쩡한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주위 사람들로부터 '얼짱' 소리를 많이 듣는 데다, 중고등학교 시절 풋볼선수, 농구선수, 레슬링선수로 활약했으니 얼굴과 몸에 조금도 이상이 없는 듯하고, 좋은 대학에서 장학금 받으며 공부하고 있으니 머리에도 문제가 없는 듯합니다.

* 이 글은 [이재봉의 평화세상] (blog.daum.net/pbpm21)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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