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까지 초등학교 동창회부터 유학생 동창회까지 다양한 친구들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만, 1975년 재수 시절 학원에서 '기도'나 칠판닦이를 하던 친구들과 가장 두터운 정을 나누어 왔습니다.
그 때부터 7-8명이 친목회를 만들어 자주 만났는데 재수를 했든 삼수를 했든 4년제 대학엔 저를 포함해 둘 밖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1979년 2월 33개월의 군복무를 마치고 3월부터 대학 1학년으로 복학했는데, 대학생활을 하면서도 학교 친구들보다는 학원 칠판닦이 친구들과 더 가까이 지냈지요.
그러다 2학년 때 그 친구들과 월례 모임을 가질 때였습니다. 예닐곱 명이 모여 저녁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다 제가 한 친구에게 무슨 농담을 했는데 이 친구가 갑자기 소주병으로 제 머리를 치더군요.
저를 빼면 유일한 대학생으로 몸집은 크지만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순하디 순한 친구였습니다. 아무런 악의 없는 농담이었는데 그토록 순하고 착한 친구가 얼마나 화가 났으면 소주병을 들었는지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소주병이 제 머리에 부딪혀 박살이 났는데도 저는 1-2분 동안 가만히 눈을 감고 식탁에 앉아 있었습니다. 모든 친구들이 제 급한 성미와 싸움 솜씨를 잘 아는 터라 죽은 듯이 앉아 있는 제 모습에 더 놀랐으리라 짐작합니다.
싸움이 크게 번질 것을 걱정했는지 빨리 나가달라는 식당 주인의 재촉에 조용히 일어서 아무 말 없이 집에 돌아가 한참 동안을 서럽게 울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꾹 참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지요.
그 뒤부터 누구에게든 무슨 일로든 주먹을 휘둘러본 적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