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를 한 달 쯤 앞둔 1975년 말 입대 영장을 받았습니다.
연기를 신청하고 1976년 3월 대학에 들어갔는데 보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영장이 나오더군요.
꿈에 그리던 대학 생활을 겨우 한 달 정도 맛본 채 1976년 4월 훈련소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6주의 훈련을 마치고 전방 포병부대로 배치 받았지요.
작대기 하나짜리 이등병으로 부대에 들어가자마자 사병으로는 끗발이 가장 센 '서무계'라 불리는 인사행정병이 되었습니다.
그 무렵엔 대부분의 병사들이 중학교나 고등학교만 마친 터에, 제 학력은 '대학 재학'인데다 계산기보다 셈이 빠를 정도의 주산 실력을 지녔고 글씨도 잘 쓰는 편에 속해 상급부대에서부터 저에 대한 '스카웃 경쟁'이 벌어질 정도였지요.
점호도 받지 않고 보초도 서지 않으며 식사도 혼자 따로 했으니 고참들로부터 기합을 받거나 구타를 당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이와 아울러 저 역시 제대할 때까지 졸병들에게 단 한 번이라도 손찌검을 해본 적이 없고요. 그 대신 아니꼽게 구는 하사들과는 몇 차례 격투를 벌였습니다.
소위 '짠빱'은 저보다 적게 먹은 놈들이 하사 계급장을 달고 분대장이라면서 거들먹거리면 '서무계' 자리를 빽 삼아 한판씩 붙었던 것이지요. 군대에서는 가장 엄하게 금하는 ‘하극상’을 가끔 저지른 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