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과 전쟁을 넘어 평화와 복지로
1. 전쟁과 대학살의 20세기
20세기는 전쟁과 대학살의 시대였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포함해 수많은 전쟁을 통해 엄청난 학살이 저질러졌다. 20세기에만 전쟁으로 대략 1억 3천만의 인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제 1,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1945년부터 시작된 냉전 기간에만 약 150개의 전쟁에서 적어도 2,200만명이 죽었다는 보고도 있다. 그리고 1990년 세계적으로 냉전이 끝남으로써 대규모 전쟁의 가능성은 크게 줄었지만, 지역 분쟁은 여전히 그치지 않고 있다. 탈냉전 시대로 불렸던 1990년대부터만 따지더라도 약 80개 나라가 거의 100개의 전쟁에 휘말려 600만명이 넘게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전쟁의 희생자들 가운데는 군인들보다 민간인들이 1.5배 또는 2배 가량 많다. 전쟁을 통해 총을 잡고 싸우는 사람들보다 무고한 민간인들의 희생이 훨씬 크다는 사실은 전쟁의 야만성과 끔찍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전쟁의 원인으로 크게 몇 가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민족 사이의 갈등이 전쟁을 불러왔다. 현재 지구상에는 약 2,000종에 이르는 민족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세계에는 200개 안팎의 나라가 있을 뿐이요, 그 중에서도 단일 민족 국가는 겨우 20여개에 불과하다. 2,000 : 200 : 20 이라는 비율에 나타나듯 평균 10민족이 1국가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많은 민족들이 지금까지 독립을 추구해온 사실로 보아 다른 민족들도 앞으로 언젠가는 독립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전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다시 말해 대부분의 국가들이 핏줄이나 언어 또는 종교가 다른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분쟁의 불씨는 오래도록 어쩌면 영원히 꺼지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둘째, 종교간의 불화가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적어도 겉으로는 평화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평화적으로 평화를 추구하는 종교는 많지 않다. 많은 종교가 목표로서의 평화는 중시하면서도 과정으로서의 평화는 소홀히 해왔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성전 (聖戰)"이라는 이름으로 크고 작은 전쟁이 얼마나 숱하게 저질러졌는가. 정의를 세우고 평화를 성취한다는 명분으로 종교마저 전쟁을 용인하거나 선호해온 것이다. 그런데 동양에서 일어난 불교와 힌두교보다는 서양에서 일어난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더욱 호전적이었으며, 특히 기독교처럼 격렬한 전쟁을 되풀이한 종교는 없다. 다른 신을 인정하지 않는 배타적 교리가 가장 큰 배경일 것이다.
셋째, 무엇보다 미국의 패권 추구가 전쟁을 일상화하고 있다. 전쟁이 미국에게는 국가 활동의 한 부분이 되어버렸다는 말이다. 20세기 내내 이 지구상에서 미국처럼 많은 전쟁을 치른 나라는 없다. 특히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지금까지 거의 70번이나 다른 나라들을 폭격하거나 군사적으로 침략하였다. 그 가운데 1980년대부터의 사례만 꼽아보자. 레이건은 그레나다 (1983), 레바논 (1983-84), 리비아 (1986), 엘살바도르 (1980s), 니카라구아 (1980s), 이란 (1987)을; 부쉬 1세는 파나마 (1989)와 이라크 (1991)를; 1990년대 클린턴은 이라크 (1993), 소말리아 (1993), 보스니아 (1994-95), 수단 (1998), 아프가니스탄 (1998), 유고슬라비아 (1999)를 폭격하거나 침략하였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부쉬 2세는 21세기의 첫 전쟁 대상으로 아프가니스탄 (2001-02)을 꼽았고, 유엔의 반대와 세계 곳곳의 대규모 반전 시위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2003)를 침략하였다. 이렇듯 반 세기가 넘도록 해마다 한 두 차례 폭격이나 침략을 해댄 셈이니 동서고금을 통틀어 미국만큼 전쟁을 즐기는 나라가 또 있겠는가.
이뿐만 아니라 미국은 1945년부터 20세기말까지 40개 이상의 외국 정부들을 전복시켰거나 시키려했고, 35명 안팎의 외국 지도자들을 암살했거나 하려했으며, 30개 이상의 반독재 저항 운동을 짓뭉갰거나 짓뭉개려 했다. 그 과정에서 수백만이 죽게 만들었고 또 다른 수백만을 고뇌와 절망의 생활을 하도록 이끌었다. 여기서 미국은 최첨단 과학을 이용해 레이져 광선으로 유도하는 "영리한 폭탄 (smart bomb)"을 "정밀한 미사일 (precision missile)"에 실어 군사 목표물을 정확하게 맞춤으로써 민간인들의 살상을 줄인다지만, 멍청하게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는 일이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1998년 아프가니스탄이 폭격 당할 때 파키스탄도 덤으로 미사일을 맞았고, 1999년 유고슬라비아가 폭격 당할 때는 불가리아와 마케도니아가 날벼락을 맞았다. 이렇게 의도되었든 아니든, 군인들이든 민간인들이든,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미국의 침략에 무려 1200만의 목숨이 사라져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은 그린 베레 같은 특수 부대를 포함한 미군들을 세계 구석구석 100개 국가 이상에 배치시켜 놓고, 유럽 여러 나라에 핵폭탄을 저장시켜 놓았다. 미국 정치인들과 관리들은 그들이 원하는 한 어디에서든 누구에게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신으로부터 주어진 권리"를 가졌다는 굳건한 신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대외 정책의 지속적인 호전성과 파괴성에도 불구하고 레이건은 "미국이 현대 역사에서 가장 덜 호전적이고 가장 평화적인 국가"라고 했으니, 미국은 21세기에도 여전히 "평화"의 이름으로 끊임없이 폭격과 침략을 자행하며 수많은 무고한 목숨을 빼앗을 것이다.
2. 세계에서 가장 불안한 동아시아
이런 상황에서 21세기 들어서도 세계에서 가장 불안정한 지역 가운데 한 곳이 동아시아다. 이러저러한 분쟁 요소가 이른 시간 안에 쉽게 해결될 기미가 적어 보인다. 나는 2000년 8월 북유럽을 여행할 기회를 가졌는데,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를 거쳐 독일까지 돌아다니는 동안 이 가운데 어느 나라도 비자를 요구하지 않았다. 게다가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나들 때도 여권을 보여주는 일조차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아시아는 어떠한가. 나는 마침 1998년 중국과 북한을 다녀왔고, 2000년엔 일본, 대만, 베트남을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런데 남한, 북한, 일본, 중국, 대만, 베트남 6개 동아시아 나라들 가운데 우리 한국인에게 비자를 요구하지 않는 외국은 단 하나도 없고 더구나 비자 받기가 까다로운 편이다. 지구 반대편 멀리 유럽 대륙에 나가서는 비자 없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의 이웃 나라들로부터는 비자를 받는 일조차 쉽지 않다는 게 얼마나 역설적인가. 이는 동아시아가 그만큼 불안정하고 이웃 나라들 사이의 친선 관계가 좋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인 것이다.
동아시아가 불안정한 데는 몇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첫째, 역사적으로 이 지역에 대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및 식민 지배에 대해 아직 일본이 적절한 사과와 보상을 하지 않고 있어, 대부분의 나라에서 반일 감정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둘째, 군사적으로 다른 지역과 달리 공동 안보 기구가 없으며, 거의 모든 나라들이 지속적으로 군비를 증강하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유럽에서는 전반적으로 군비 감축이 이루어졌지만, 동아시아에서는 그와 비슷한 움직임이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셋째, 경제적으로 가장 빠른 경제 성장을 보이면서도 이 지역만의 공동 시장이 없다. 넷째, 이념적으로 6개 나라의 경제 체제 및 수준이 상대적으로 부유한 자본주의 3개국 (일본, 남한, 대만)과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회주의 3개국 (중국, 북한, 베트남)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중국과 대만 그리고 남한과 북한 사이에는 분단에 따른 대립과 갈등의 구조가 깨지지 않고 있다. 다섯째, 지리적으로 중국과 베트남, 중국과 일본, 그리고 일본과 남한 사이에는 언제든 영토 분쟁이 일어날 조짐이 있다. 여섯째, 요즘 가장 심각한 문제로 미국이 북한을 "깡패 국가" 또는 "악의 축"으로 찍어 폭격이나 침략을 꾀하고 있고, 북한은 이에 맞서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공개적으로 추구할 것처럼 보인다.
이에 덧붙여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견제가 동아시아의 안정을 해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미국이 냉전 종식 이후 누리고 있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지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잠재적인 경쟁국 중국을 견제하느라 일본을 껴안고 동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냉전 체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와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들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요, 1997년에 발표된 미국과 일본 사이의 방위 지침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며, 2001년 부쉬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세계적으로 갈등과 긴장을 불러왔던 미사일 방어 체제 구상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요, 한반도가 통일된 이후에도 주한미군을 유지시킨다는 것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 아니겠는가.
3. 전쟁을 넘어 평화와 복지의 한반도로
이러한 동아시아 불안정의 핵심 요인은 한반도의 분단 구조다. 한반도의 휴전선이 동아시아를 이념적으로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자본주의 3개국과 사회주의 3개국을 갈라놓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얘기하였듯이, 세계적으로는 평균 10민족이 1국가를 이루고 있어서 갈등과 분쟁이 그치지 않고 있지만, 한반도에서는 1민족이 2국가를 이루고 있어서 대립과 폭력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분단 이후 남한과 북한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서로 대립되는 이념을 앞세우고 반세기가 넘도록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서로 다른 체계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남한이든 북한이든 끊임없이 통일을 외쳐왔음에도 불구하고 통일이 실현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서로가 겉으로만 통일을 바랐을 뿐 실제로는 분단 체제를 선호했기 때문이다. 양쪽 모두 통일을 위한 각종 선언이나 제안 자체는 온갖 미사여구로 수식하면서도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내세워온 것이다. 남한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체제로의 통일이라는 최종 목표를 미리 설정함으로써 북한 정부가 거부할 수밖에 없도록 이끌었고, 북한은 주한미군 철수 등의 전제 조건을 내세움으로써 남한 정부가 받아들이기 어렵게 만들었다. 남한은 체제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경제력에 의한 흡수 통일을 원했고, 북한은 연방제를 앞세우며 군사력에 의한 흡수 통일을 추구했다. 서로가 겉으로는 합의에 의한 통일을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돈이나 총에 의한 일방적 통일을 지향해온 것이다. 따라서 남한이 통일을 주장하면 북한은 체제 붕괴를 우려하고, 북한이 통일을 얘기하면 남한은 국방비 증액을 고려하는 기막힌 현실을 보아 왔다.
한편, 제 2의 한국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은 남한군의 북침이나 북한군의 남침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한미군을 포함한 미국군의 북폭에 의해서일 것이다. 우리는 흔히 주한미군의 주요 역할이 북한의 남침을 억제하는 데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미국 때문에 북한이 선뜻 남침을 강행할 수 없다는 점은 지나치게 강조하면서도, 미국 때문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은 한사코 외면하려 한다.
실제로 1994년 3월부터 몇 달 동안 북한의 핵무기 개발 의혹과 관련해, 전쟁 불사 발언까지 서슴지 않으며 한반도를 한국 전쟁 이후 최대의 위기로 몰고 간 나라는 남한도 북한도 아닌 미국이었다. 그리고 1999년 2월에도 북한의 금창리 지하 시설 및 미사일 개발 의혹과 관련해 미국의 강경파들은 북폭을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의 정치적 또는 경제적 이익 때문에 우리 한민족이 공멸할 수도 있는 일이 미국에서 공개적으로 논의되는데도, 남한에서는 이를 우려하거나 비판하는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한미 공조라는 명분 아래 미국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였을까.
앞에서 자세히 밝혔듯이 20세기에 이 지구상에서 미국처럼 많은 전쟁을 치른 나라는 없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든 세계의 정의와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든 말이다. 동기와 목적이 무엇이든 미국이 이처럼 호전적 (好戰的)으로 된 까닭은 세계 제일의 군사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신속하게 물리적으로 해결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로든 한반도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나는 일은 피해야 한다. 북한의 남침에 의하든 미국의 북폭에 의하든,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큰 희생자는 바로 우리 한민족일 수밖에 없다. 모든 당사국들이 막대한 군대와 첨단 무기를 가지고 있는 마당에 어느 쪽이 이기고 어느 쪽이 질 것인지 따지는 것이야말로 부질없는 짓이다. 양쪽의 극단적인 세력들은 전쟁을 통해서라도 상대방을 무너뜨리고 싶어하겠지만, 죽어도 전쟁만큼은 피해야 한다. 통일의 목적이 남북한이 더불어 잘 살기 위한 것일진대, 전쟁에 의해 불바다와 잿더미 위에서 통일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말이다.
따라서 남북한이 안으로는 이념과 체제에 관한 문제는 당분간 접어두고 2000년 6월의 정상 회담에서 합의한대로 국가 연합이나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지향하면서, 점차적으로 이념과 체제를 넘어서 자유와 평등이 조화를 이루는 복지 사회를 추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자본주의는 조금 왼쪽으로 사회주의는 약간 오른쪽으로 변화를 추구해 감으로써, 궁극적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정치적 자유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경제적 평등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서로 잘 살 수 있는 복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