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사람과 오렌지 2개의 갈등: 평화의 조건은 창의와 인내
1992년 하와이대학에서 [갈등 해결]이라는 강좌를 들을 때다. 유럽 출신의 교수가 구사하는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해 쩔쩔매며 매주 내주는 과제물 제출에 소홀하다, 2주만에 그 과목을 포기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교수의 위협적 제안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강좌 내용보다는 요한 갈퉁이라는 교수의 세계적 명성 때문에 그 과목을 신청하였던 터라 최선을 다 해보겠다며 버텼다.
3주째 숙제는 '세 사람 앞에 놓인 두 개의 오렌지'라는 갈등을 비폭력적으로 풀어 보라는 것이었다. 사람은 많은데 자원은 적으니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그 갈들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라는 취지였을 것이다. 한 주 동안 골똘히 궁리하여 대충 다음과 같은 내용을 써냈다.
전제 조건은 세 사람이 모두 오렌지를 원한다는 것이다. 오렌지를 원치 않거나 양보하는 사람이 있다면 갈등이 생기지 않을테니까. 첫째, 가장 공평한 방법은 세 사람이 2/3씩 나누어 먹는 것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나누기가 쉽지 않고 번거롭다. 둘째, 가장 쉬운 방법은 힘이 세든 약하든 누구든지 선택될 수 있는 방법으로 2명을 뽑아 하나씩 갖도록 하는 것이다. 가위 바위 보나 제비뽑기 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조금 번거롭지만 나누기 쉬운 방법으로 오렌지 2개를 쥬스나 즙으로 갈아 세 잔으로 나누어 마신다. 넷째, 오렌지 2개를 좀 작은 오렌지 3개로 바꿔 하나씩 가지는 것도 번거롭지만 쉽게 나누어 가질 수 있는 방법이다. 이와 비슷하게 오렌지 2개를 사과나 바나나 등 다른 과일 3개로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오렌지 2개를 팔아 돈을 세 사람이 나누어 갖고 각자 알아서 쓰는 것도 좋을 것이다.
과제를 검토해 본 교수는 내가 가장 잘했다고 칭찬해주었다. 그러면서 내가 생각하지 못한 방법이 두 가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오렌지가 아깝지만 버리자는 것이다.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을 아예 제거해버리자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오렌지 씨앗을 취하여 오렌지 나무로 키우자는 것이다. 몇 년 뒤에는 세 사람뿐만 아니라 세 사람의 가족을 포함해 많은 사람이 오렌지를 실컷 먹을 수 있을테니까.
갈등을 비폭력적으로 해결하기란 이렇듯 쉽지 않다. 과정이나 절차가 번거롭고 복잡하여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평화를 평화적으로 추구하고 성취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2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해보는 창의력이요, 다른 하나는 꾹 참고 기다리는 인내심이다. 창의와 인내는 고통과 시간을 요구하겠지만, 갈등을 폭력적으로 해결할 때 치르는 대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튼 그 과제 이후 갈퉁 교수는 나를 '영어도 못알아 듣는 문제 학생'에서 '창조적인 발상을 가진 똑똑한 학생'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신감을 갖고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열심히 공부했더니 기꺼이 나의 지도 교수가 되어주기도 했다. 그가 유럽으로 떠난 뒤엔 하와이에 들를 때마다 나를 집으로 초대하였으며, 내가 귀국한 뒤로도 지금까지 그가 어디에 있든 국제 전화나 이메일로 소식을 주고받고 있다. 내가 그의 가르침을 따라 평화학을 공부하며 평화 운동을 하게 된 동기다.
그런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 사회가 지금까지 염원해오고 앞으로도 추구해야 할 목표가운데 평화만큼 절실한 게 있을까. 특히 한반도에서는 이데올로기 대립이라는 냉전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가운데 한국 전쟁이라는 열전도 아직 완결되지 않고 있다. 오렌지가 다른 형태로 바뀔 때 갈등이 쉽게 해소될 수 있듯이, 남한은 시장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자유에서 평등을 지향하고 북한은 시장사회주의를 발전시켜 평등에서 자유를 확대하며 서로 간에 궁극적으로 복지 사회를 추구한다면 체제와 이념의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져 본다.
나는 또한 평화학을 공부함으로써 인권 운동은 물론 여성 운동이나 환경 운동 등에도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성차별 또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이 없어지지 않고는 평화로운 사회가 이룩될 수 없으며, 환경 파괴 또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폭력이 그치지 않는다면 진정한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데모 없는 날을 보내기 어려웠던 1980년대 초에 대학을 다닐 때는 데모 한 번 참여하지 않았던 20대의 '모범생'이 이제는 학생들의 데모를 부추기는 40대의 '문제 교수'로 변신하게 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평화를 추구하는 과정 역시 반드시 평화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폭력이 일시적으로 평화를 가져올 수는 있어도 폭력으로 평화를 영원히 지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부를 수밖에 없다. 내가 학생들에게 정부의 인권 침해와 사회의 불의라는 구조적 폭력에 맞서더라도 돌멩이나 화염병 대신 장미 한 송이씩 들고 비폭력 데모를 벌이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이유다. 그리고 내 이메일 아이디와 홈페이지 주소로 pbpm을 사용하는 이유다. 갈퉁 교수가 쓰고 나와 동료들이 번역해 출판한 책의 이름이기도 한 Peace By Peaceful Means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의 약자 pbpm. 누구든지 목표로서의 평화는 중시하면서도 수단 또는 과정으로서의 평화에는 소홀하기 쉬운데, 평화는 어떠한 경우에도 평화적 수단으로 성취해야 된다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내 은사의 가르침이요 나의 신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