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선거 예선전이 매우 뜨겁다. 미국은 좋으나 싫으나 한반도뿐만 아니라 온 세계의 평화에 큰 영향을 미치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을 선출하는 과정은 다른 공직자를 선출하는 과정이나 다른 나라의 대통령 선출과정보다 매우 복잡하고 지루한데, 대통령선출 과정은 크게 예비선거와 본선거로 나눠볼 수 있다. 선거가 있는 해의 7-8월에 열리는 전국 전당대회에서 각 정당의 대통령후보가 결정되기까지 당내에서 후보지명을 받기 위해 경쟁하고 타협하는 과정이 예비선거라면, 각 정당의 후보끼리 전체 국민의 심판을 받는 과정이 본선거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전국 전당대회에서 당의 대통령후보를 결정하는 대의원을 당원들이 뽑는 절차가 예비선거로, 대개 1-2월 아이오와주와 뉴햄프셔주에서부터 시작하여 6월경 끝난다. 이 과정에서 2-3월의 어느 화요일에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주에서 동시에 대의원을 뽑는데, 이날을 '수퍼 화요일 (Super Tuesday)'이라고 부른다. 올해는 2월 5일이었다.
이때쯤이면 각 정당 내에서 선두주자의 윤곽이 드러나는데, 올해의 경우 공화당에서는 매케인 후보로 이미 확정되었지만, 민주당에서는 오바와와 클린턴 후보가 3월 중순 현재까지 접전을 펼치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3월 12일 현재 CNN에 따르면 공화당의 매케인은 전체 대의원 2,380명 가운데 1,325명을 확보하여 당산확정에 필요한 1,191명을 훨씬 넘어섰는데, 민주당에서는 전체 대의원 4,048명 가운데 클린턴이 1,478명, 오바마가 1,608명을 확보함으로써 둘 다 과반수인 2,025명에 크게 못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둘 사이의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민주당후보로 확정되려면 아마 6월까지 가야될 것 같다.
전당대회는 보통 7-8월에 열려 대통령후보를 공식적으로 지명한다. 여기서는 예비선거 과정에서 벌어졌던 당내 갈등을 수습하고 자당 후보가 타당 후보를 상대로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도록 당내 화합과 결속을 다지며 선거 쟁점과 정책을 결정하게 된다.
대통령선출을 위한 국민투표는 11월 첫째 월요일 다음의 화요일 (올해는 11월 4일) 실시된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이날 유권자들은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 선거인단을 선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선거인들은 12월 둘째 수요일 다음의 월요일 (올해는 12월 15일) 대통령을 결정하게 된다. 물론 선거인들은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대통령을 결정하기 때문에 11월 초 선거에서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확정된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 선거인단은 모두 538명인데, 이는 50개 주의 연방 상원의원 100명과 하원의원 435명 그리고 수도 와싱턴에 할당된 3명의 선거인을 더한 숫자다. 국민투표를 통해 선거인단을 뽑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득표에 비례하여 선거인이 확보되는 것이 아니라 각 주의 승자가 그 주에 할당된 선거인을 모두 확보한다는 점이다. 즉 국민투표는 각 주별로 집계되는데 그 주에서 단 1표라도 많이 얻은 후보가 그 주에 할당된 선거인단을 독식 또는 싹쓸이 (winner-take-all) 해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투표 득표율과 선거인확보 수가 비례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투표에서는 더 많은 지지를 받고도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하는 경우가 지금까지 네 번이나 있었다. 최근의 사례로 2000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의 고어 후보가 공화당의 부쉬 후보보다 국민투표에서는 더 많은 지지를 받았지만, 선거인단 확보에서 뒤쳐져 억울하게 낙선되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국민투표에서 한 후보가 인구가 많은 10개 안팎의 주에서 근소한 차이로나마 이긴다면 인구가 적은 나머지 40개 안팎의 주에서 참패를 하더라도 270명의 선거인을 확보하여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다.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 나라에서 민주주의의 기본적 요소의 하나인 다수결원칙이 대통령선거에서조차 지켜지지 않게 되는 불합리성 때문에, 이와 같은 간접선거제를 국민투표에 의한 직접선거제 또는 선거인을 통하더라도 국민투표 득표율에 따라 선거인을 할당하는 비례선거인단 제도 등으로 고치자는 주장이 몇 차례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미국이 연방제국가라는 특수성 때문에 각 주들의 독립성과 대표성을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고 헌법을 개정하기가 쉽지 않은 관계로 지금의 간접선거 제도가 고수되고 있다.
그런데 올해 11월 실시될 대선에서는 민주당후보가 이길 가능성이 커보인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이 산뜻하게 끝나지 못하고 수렁에 빠져드는 한편 나라경제가 어려워지자 부쉬 대통령에 대한 인기나 지지도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면서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를 통해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대통령이 나올 것 같다. 최초의 흑인대통령이나 최초의 여성대통령 말이다.
지금까지 43명의 대통령이 모두 백인 남자들이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딱 한 사람을 빼면 영국계 신교도였다. 참고로 지금까지 미국을 이끌어온 주류는 영국계 백인 신교도를 의미하는 와습 (WASP, White Anglo-Saxon Protestant)이었는데, 이에 속하지 않은 대통령이 한 사람 있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케네디다. 미국의 백인들 가운데 영국계가 최상급이라면 그들의 식민통치를 받았던 아일랜드계가 최하급인데 그는 아일랜드계였다. 신교도 (Protestant)가 아니라 구교도 (Catholic)였다. 게다가 그는 1960년 43살의 최연소 대통령당선 기록도 세웠다. 이렇듯 케네디는 최초의 비영국계 백인 대통령, 최초의 비개신교도 대통령, 그리고 선거를 통한 최연소 대통령이라는 진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그로부터 약 반세기가 흐른 2008년엔 다른 최초의 기록이 세워질 것 같다는 말이다. 엄청난 변화인 것이다.
특히 흑인 대통령이 나온다면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릴만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은 다른 나라에서처럼 미국에서도 인구의 거의 절반이지만, 흑인은 겨우 13%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법적으로 투표권을 갖게 된 것은 1870년이었지만, 실질적으로 '사람' 대접 받으며 투표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거의 100년이 지난 1960-7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터에 흑인 대통령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꽤 높아진 것이다.
이제, 민주당 후보로 클린턴이 되든 오바마가 되든 11월 본선에서 공화당 후보를 이길 것 같다는 생각에서 이들의 대외정책 공약을 살펴보자. 대외정책 분야에서 후보 시절의 공약이 그대로 유지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우리 한반도의 안정이나 평화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이 민주당은 진보적이고 공화당은 보수적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둘 다 보수적이라는 뜻이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민주당이 조금 덜 보수적이고 공화당이 조금 더 보수적이라고 하는 게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더구나 대외정책에서는 더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지금 부쉬 대통령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일방주의' 대외정책이라는 것도 9.11 이후 강조되어서 그렇지 냉전종식 직후인 1990년대 초 빌 클린턴 행정부 때 이미 다듬어졌던 것이다.
물론 부쉬는 좀 특별하다. 9.11을 겪으면서, 다른 나라들이 미국을 공격할 가능성이 보이면 실제로 공격하지 않더라도 미국이 먼저 공격할 수 있다는 이른바 '선제공격론'을 내세우고, 외교보다는 전쟁을 앞세우며, 일방주의를 자주 써먹는 등 워낙 호전적인 대외정책을 펼쳐왔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힐러리 클린턴이나 오바마 둘 다 부쉬의 일방주의를 거세게 비판해 왔다. 지나친 일방주의 때문에 동맹국들이나 우방국들의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에서는 한나라당 정치인들과 대부분의 언론인들이 한미동맹의 약화를 노무현 정부 대외정책의 가장 큰 잘못으로 주장하고 있으니 부쉬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공존 기간이 짧다는 것을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클린턴은 중국의 중요성을 매우 강조하고 있으니 그가 집권하면 물론이요 오바마가 집권하더라도 동북아 정세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길 것 같다. 무엇보다 부쉬가 강조했던 미일동맹의 강화에 구멍이 뚫릴 것이다. 이에 따라 아시아에서 일본의 독불장군식 외교에도 힘이 좀 빠지리라 생각한다. 그러면 이명박 정부나 한나라당에서 추구하려고 하는 한미일 동맹 강화를 통한 중국과 조선 (북한)에 대한 고립도 어려워지게 되지 않을까. 내가 지금부터 미국의 민주당 정부를 기다리는 가장 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