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오렌지’를 통해 갈퉁 교수로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하자 신이 나서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주엔 갈등 해결에 관한 연극 대본을 만드는 과제가 있었는데 거기서도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 날 저녁 수강생들을 집으로 초청해놓고는 부인에게 저를 ‘아주 우수한 학생’이라고 소개하더군요. 그 다음 주 과제를 받아보고는 내용이 매우 좋다며 자신의 글에 인용해도 되겠느냐고 물어보기도 했고요.
이렇게 3주 연속 히트를 친 뒤 그의 연구실을 찾아갔습니다. 앞으로 반미주의에 관해 논문을 쓰고 싶은데 지도교수가 되어주겠느냐고 물었더니 주저 없이 그러겠노라는 대답이 돌아오더군요.
그러나 2년 뒤부터 그가 유럽의 대학들에서만 강의하는 바람에 제 논문 지도는 못하게 되었지만, 하와이를 방문할 때마다 저를 집으로 초청했습니다. 제가 1994년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뒤로는 유럽이나 일본으로 초청하기도 했고요.
저는 갈퉁 교수의 가르침과 사랑에 조금이나마 보답하기 위해 그가 지금까지 펴낸 100여권의 책 가운데 1996년 출간한 Peace By Peaceful Means를 번역 출판했습니다. 2000년 평화연구에 관심 있는 동료 학자들과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라는 제목으로 번역서를 낸 것이지요.
나아가 그 책의 영문 제목 첫 글자들 (pbpm)을 제 이메일과 블로그 그리고 홈페이지 주소에 써왔습니다. 누구든지 목표로서의 평화는 중시하면서도 수단 또는 과정으로서의 평화에는 소홀하기 쉬운데, 평화는 어떠한 경우에도 평화적 수단으로 성취해야 된다는 뜻을 담고 있는 말이지요. 은사의 가르침이 애제자의 신념이자 생활 방침으로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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