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에서 내다보는 길거리의 풍경이나 가게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용모는 앞에서 얘기했듯 몹시 생소하기도 하고 무척 당혹스럽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보고 들을 수 있는 익숙한 모습이지만, 1980년대 초 제가 처음 미국에 들어가 가게 일을 할 때는 참 생경했지요.
먼저 남자나 여자나 몸집이 거대한 사람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요즘은 우리나라에도 뚱뚱한 사람들이 크게 늘었지만, 제가 1970년대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이른바 '비만증'을 보인 학생이 전교에 겨우 1-2명이었는데, 그 무렵 마주치는 흑인들의 절반 이상이 '비만증'에 걸린 사람들처럼 보였으니까요. 가진 사람들은 영양가가 높으면서도 살이 안찌는 음식을 골라 먹으며 돈을 들여 체중을 조절하는 운동을 할 수 있지만, 없는 사람들은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먹으며 헬스클럽에도 가지 못하니 그럴 것이라는 분석을 나중에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머리치장이 독특했습니다. 남자들은 대부분 수건을 뒤집어쓰고 여자들은 여러 갈래로 새끼줄처럼 딴 모습이었으니까요. 가게에서 같이 일하는 친구에게 왜 푹푹 찌는 더운 날에도 손수건을 쓰느냐고 물었더니 곱슬머리를 가라앉히기 위해서라더군요. 대개 매끈한 비단으로 만들어졌는데 '손수건 (handkerchief)'이 아니라 '밴대나 (bandanna)'라고 하면서요.
무엇보다 재미있는 모습은 커다란 스테레오 카세트 플레이어를 어깨에 짊어지거나 손에 들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휴대용 (portable)'이라고 부르기 곤란할 정도로 두 개의 스피커가 달린 '붐박스 (boombox)'를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크게 틀어놓은 채 어깨에 짊어지고 몸을 흔들며 걷는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지요. 요즘엔 그들도 손바닥 안에 쏘옥 들어오는 mp3나 iPod에 수천 곡의 노래를 담아 이어폰을 통해 듣겠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너덧 살 아이들까지 서 있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걸으면서도 흔들어대는 몸짓이 어찌 그리 유연한지 그들은 모두 타고난 춤꾼 같더군요. 그들의 노래와 춤 솜씨는 선천적이랄까요.
또한 대낮에도 1리터짜리 맥주병을 누런 봉투에 넣어 가지고 홀짝 홀짝 마시며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 가운데 젊은이들은 가끔 가게에 와서 빨대 (straw)를 찾더군요. 스트로를 비스듬하게 두 토막으로 잘라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코크 (coke)를 들이키기 위해서였는데, 코카콜라 (Coca-Cola)를 입으로 마시는 게 아니라 코카인 (cocaine)을 코로 들이키는 것이지요. 미국인들은 코카콜라를 흔히 'coke'으로 줄여 부르는데 이는 코카인의 속어이기도 하거든요.
참고로 우리는 '약'을 'drug'으로 '약국'을 'drugstore'로 옮기는 경우가 많은데, 미국인들에게 'drug'은 일반적으로 '마약'을 가리킵니다. 가게 주변의 젊은이들이 빨대로 들이키던 하얀 밀가루 같은 코카인이 대표적인 'drug'이지요. 대마초 (marijuana)는 마약 (drug)에 끼지도 않는 것 같고요. 우리가 흔히 가리키는 약은 'medicine'이고 약국은 'pharmacy'라는 것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이 글은 [이재봉의 평화세상] (blog.daum.net/pbpm21)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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