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초 최준수 남북평화재단 사무총장이 [평화산책]을 구상할 때 저는 반대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무슨 '사색'이나 '명상' 등의 제목을 단 이메일만 하루 평균 대여섯 통씩 받아 왔는데 대개 건성으로 읽거나 열어보지도 않은 채 휴지통으로 던지곤 했기 때문입니다. 남북평화재단의 이름으로 이런 쓰잘데없는 이메일을 지속적으로 보내게 되면 재단의 이미지도 흐려질 수 있고 정작 재단에서 중요한 사업을 알리는 이메일을 보낼 때도 '쓰레기' 취급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우려한 것이지요.
긍정적 효과가 클 것이라는 최준수 사무총장의 확신과 강요 섞인 권유에 마지못해 응했습니다. 이왕 쓰는 글이라면 언젠가는 제가 정리해보고 싶은 삶을 담고 싶다는 생각으로 어릴 때는 싸움을 좋아하던 제가 어떻게 비폭력주의자/평화주의자로 바뀌게 되었는지 그려 보았습니다. "싸움꾼에서 비폭력주의자로"라는 제목으로 읽혀지지도 않은 채 휴지통에 버려질지 모를 글을 25차례나 보내게 된 배경입니다.
2009년 여름 죠지아를 방문했을 때 한 목사님이 제 글을 재미있게 읽고 있다는 인사를 건네더군요. 뉴욕의 한 모임에서 강연을 할 때도 몇 몇 어르신들로부터 비슷한 관심을 받았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 그렇게 싸움을 잘 했는지 상상도 못했다는 노교수님도 계셨고요.
물론 글이 나가는 중에 틈틈이 응원해주는 이메일을 더러 받기도 했습니다. 9월 경 그 글을 끝내자 섭섭하다며 즉시 다른 글을 시작해달라는 재촉도 있었습니다. 12월 말 남북평화재단 송년음악회에서는 제가 옛날에 잘 싸웠다고 해서 체격이 아주 큰 줄 알았는데 비쩍 말랐다고 인사를 건네는 분도 계시더군요. 남들에게 고백하기 어려운 감옥살이 등의 얘기조차 공개적으로 털어놓는 용기를 지닌 것 같다는 격려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주로 평화와 통일에 관한 딱딱하고 때로는 사나운 제 글에 익숙해졌던 분들로부터 '운동가의 부드러운 글'이 더 좋다는 칭찬이 재미있었습니다.
이렇게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신 분들을 생각하며 다시 불요불급한 글을 써보렵니다. 제 글을 포함한 [평화산책]을 받기 싫은 분들은 바로 휴지통에 버리거나 아예 '수신거부'를 하면 제가 민폐를 덜 끼치리라 믿으며 앞으로 매주 월요일 찾아뵙고 싶습니다. 참고로 2009년 25차례에 걸쳐 연재했던 "싸움꾼에서 비폭력주의자로"라는 글은 제 블로그 (blog.doum.net/pbpm21)에 다시 정리해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