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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 흑인들에 대한 인식의 변화
  글쓴이 :      날짜 : 10-10-19 10:44     조회 : 4838    

 1992년 봄학기 갈퉁 교수의 ‘갈등 해결’ 수업을 듣던 중 이른바 ‘LA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거의 일주일 동안 로스앤젤레스 역사상 최대 규모의 폭동 또는 항쟁이 일어났는데, 우리 한인들이 흑인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당한 사건이었지요. 코리아타운의 약 90%가 파괴되면서 막대한 재물뿐만 아니라 귀중한 목숨까지 많이 잃었으니까요.

 1991년 3월 LA에서 과속으로 질주하는 ‘로드니 킹’이라는 흑인 운전자를 백인 교통경찰관들이 체포하면서 과잉 폭행을 저질렀습니다. 이 폭행사건은 다음 해 법정에서 배심원들에 의해 가볍게 처리되었는데, 네 명의 경찰이 운전자를 개 잡듯 패는 모습이 TV로 방영되자 흑인들이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시위가 격렬해질 때 LA 지역의 TV 방송들은 1991년 3월의 이른바 ‘두순자 사건’을 집중적으로 보도했습니다. LA에서 가게를 운영하던 두순자라는 한인이 10대 흑인 소녀가 물건을 훔쳐가는 것으로 오인하여 말다툼과 몸싸움을 벌이다 소녀를 총으로 쏴 죽였는데, 검사는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판사는 사회봉사와 함께 집행유예 판결을 내린 사건이었지요.

 결과적으로 ‘로드니 킹 사건’과 ‘두순자 사건’의 비슷한 재판 결과가 겹치면서 미국 사법제도에 대한 흑인들의 분노와 한인들에 대한 흑인들의 반감이 한인들에 대한 폭동으로 이어지게 되었던 셈입니다.

 저는 LA 폭동에 관한 뉴스를 접하며 뉴욕과 텍사스에서의 제 경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미 소개했듯 제가 미국 땅을 밟은 직후 가게 생활을 하며 흑인들의 욕설과 폭력, 도둑질과 강도짓 등을 수없이 겪었기 때문에 그들은 오로지 혐오와 공포 그리고 경멸의 대상일 뿐이었지요.

 그러나 흑인들에 대한 한인들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 무렵 미국의 한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야채가게, 세탁소, 햄버거가게, 잡화점 등을 운영하는 것이었을 텐데, 대부분 흑인 거주 지역에서 장사하기 십상이었습니다. 백인 거주 지역에서 영업하기 곤란한 자본의 영세성, 백인들의 까다롭거나 깐깐한 소비 습성, 흑인들의 과소비 성향 등이 큰 이유였겠지요.

 그런데 흑인 지역에서 흑인들을 상대로 돈을 벌면서 그들을 불신하고 경멸하기 일쑤였고 그 지역에는 봉사나 기여를 거의 하지 않거나 소홀히 하는 것 같았습니다. 흑인 지역에 들어가 번 돈으로 흑인들이 소유하기 힘든 고급차를 과시하듯 몰고 다니면서, 백인들에게는 수모를 당하면서도 백인 지역에 집을 장만하고 사는 것이었지요.

 공부를 하면서 흑인들에 대한 한국인들의 선입관에는 오래 전부터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예를 들어, 1940년대 후반 시인 배인철이 한국인과 흑인들은 같은 약소민족이라며 백인에게 박해받는 흑인을 동정하는 시 서너 편을 발표하자, 우리 문단에서는 “유별난 짓으로 남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값싼 행위”라고 비판했더군요. 그 연장선에서 1980년대 반미운동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전까지는 시나 소설 등의 문학작품 속에서 미국인들에 대한 부정적 측면은 전부 흑인을 등장시켜 묘사해 왔고요.

 이에 덧붙여, 글렌 페이지 교수로부터 비폭력 정치학을 공부하고 요한 갈퉁 교수로부터 평화적 갈등 해결을 배운 터라 흑인들에 대한 제 인식과 시각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1992년 5-6월 학교에서 세미나를 통해서나 하와이 한인동포 신문을 통해서 LA 폭동 ‘가해자’인 흑인들을 옹호하고 오히려 ‘피해자’인 한인들을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게 된 배경입니다.

* 이 글은 [이재봉의 평화세상] (blog.daum.net/pbpm21)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

본 메일은 2009년12월16일 기준,
회원님의 수신동의 여부를 확인한 결과 회원님께서 수신동의를 하셨기에 발송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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