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평화재단, 독일 통일운동의 주역 울리케 포페 초청 강연 개최
2007년 10월 09일 (화) 21:44:51 안혜총 전문위원 bada@kmctimes.com
2007 남북정상회담’의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요즈음, 통일과 평화를 위한 보다 현실적인 대안과 적용이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 통일운동의 주역이었던 울리케 포페 여사가 내한해 관심을 끌었다.
1989년 ‘독일통일을 위한 동서독 중앙원탁회의’를 주도했던 전업주부 사회운동가 울리케 포페. 남북평화재단 주최로 지난 8일 배재빌딩 학술재단에서 한국 여성운동가들과 만난 자리에서 포페 여사는 자신의 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질문에 답변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울리케 포페 여사와의 일문일답.
△ 많은 사람들이, 1989년 베를린에서 나타난 변화는 오랫동안 점진적으로 이뤄져 온 평화운동의 결과라고 말한다. 이 중 특히 1980년대 초반 서독에서 일어난 대규모 평화운동이 영향을 끼쳤다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사실이다. 당시에는 나토의 미사일 전진배치와 관련, 전 유럽이 평화에 대한 위협을 공감하고 있었다. 그래서 서독의 평화운동가들이 직접 동독에 와서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당시 동독의 한 목회자가 목사관을 개방하자, 거기에서 ‘휴가 간다’고 핑계대고 모인 사람들이 워크샵 등을 했다.
△ 공산주의 하에서 어떻게 이런 모임이 가능했나.
▲ 물론 당시 모든 형태의 평화운동은 반체제 운동으로 규정돼 국가로부터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모임도 도청을 당하고, 심지어 정부의 스파이도 있어 늘 모임에 대해 알리곤 했다. 1992년 동독 비밀경찰의 문서가 공개된 후 스파이가 누구인지 알게 되기도 했다. 물론 동서독과 남북한의 경우 많은 것이 다르다. 동독에선 서독의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는 등 북한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융통성이 있는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 통일 이전 동서독 여성운동가들의 공식·비공식 모임이 있었을 것 같다.
▲ 비공식적 모임은 주로 개인적으로 방문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교회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공식적 모임은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 포페 여사가 활동했던 1980년대 여성 단체들 내부의 인적 구성은 어떠했나. 주로 엘리트들로 구성돼 있었나?
▲ 대부분의 여성들이 대학을 다니다 제적 당하거나, 나처럼 대학을 졸업했더라도 직업이 없는 경우에 속했다. 또는 직장에 매이지 않는 프리랜서도 있었지만, 사회적으로 낮은 직종에 종사하는 여성이 많았다.
△ 1989년 가을 ‘독립여성단체’라는 단체를 구성하고, 통일 이후까지 사회적 운동 방향을 모색했다고 했는데, 현재까지 이 단체가 발전시켜 온 것은 어떤 것인가. 또한 현재 독일 여성 평화운동에 있어 아젠다는 무엇인가.
▲ 안타깝게도 이 단체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해체됐다. 또한 현재 비폭력적 갈등해소나, 난민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는 평화단체들이 여럿 활동하지만, ‘평화운동’이라고 불릴 만한 것은 없는 실정이다.
△ 단체가 해체된 원인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듣고 싶다.
▲ 우선 모인 사람들의 정치적 색깔이 너무 다양했다는 데 문제가 있었다. 공산주의부터 신자유주의적인 색채까지, 스펙트럼이 너무 넓어서 사람들이 모이면 싸우는 일도 흔했다. 이는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 중요했던 그 당시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다.
△ 미안한 얘기지만, 구성원들이 지켜야 할 ‘이념’이 없었던 건 아닌가.
▲ 동감이다. 개인의 이해관계와 정치색을 넘어 모두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변명하자면, 당시는 워낙 중요한 사건들이 발발하고 있던 때였다는 것이다.
△ 한국과는 분단의 원인과 상황 등이 다르지만, 독일이 통일할 때 주변국이나 기득권층의 반발은 없었나?
▲ 독일이 통일하기 위해선 미국과 영국, 프랑스, 소련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러나 영국의 대처 정부와 프랑스의 미테랑 정부는 반대했다. 이미 한 차례 전 유럽을 전쟁으로 몰고 갔던 독일이 다시 통합되면, 평화에 잠재적 위협이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 단적으로 비교하긴 어렵겠지만, 동독과 현 독일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어느 쪽이 높다고 생각하는가.
▲ 현재 독일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다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기회’라는 문제를 본다면 오히려 열악할 수도 있다. 기회에 있어 남성과 여성의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른 동구권 국가와 비교한다면 구(舊)동독 여성의 지위가 높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비교 대상이 남성이 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 기독교 신자로 알고 있다. 신앙이 인생에 끼친 영향은 어떠한가?
▲ 나는 처음에는 무신론자였다. 하지만 1980년대 평화운동을 하면서 만나고 사귀게 된 여성 목회자와 교인들로 인해 기독인이 됐다. 이후 신앙은 나에게 이 일을 하는 데 큰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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