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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live]광명성 발사 둘러싼 미국 태도가 수상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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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12-04-04 13:10
조회 : 1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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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기인 4·15 전후에 광명성 3호 위성을 발사하겠다고 하자 모든 시선이 북한의 의도에 쏠렸다. 미국과 맺은 '2·29 합의'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또 뭐하는 짓이냐는 투다. '북한은 예측 불가능하고 비합리적'이라는 인식이 낳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러나 새로운 사실이 계속 드러남에 따라, 이상한 것은 북한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이라는 의문이 커져간다.
처음에는 광명성 3호를 발사하겠다는 북한의 발표가 2·29 합의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작 2·29 합의에는 미사일 발사를 유예한다는 표현은 있지만, 인공위성 발사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즉 그동안의 북·미 합의에서 통상적으로 사용해온 '모든 미사일'이라는 말 대신 이번에는 '장거리 미사일'이라고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인공위성 발사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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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uter=Newsis 김정은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인민군 육·해·공 합동 타격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 북한이 발사하고자 하는 게 미사일이냐, 인공위성이냐 하는 것은 북·미 양측의 해묵은 쟁점이기 때문에, 미국이 실수로 '모든'이라는 말을 빼먹었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와중에 북한이 올해 4·15를 전후해 광명성 위성을 발사하겠다는 계획을 김정일 위원장 사망 사흘 전인 지난해 12월14일(현지 시각 12월15일) 미국에 통보했다는 워싱턴발 뉴스가 나왔다. 미국은 이미 지난 연말에 북한의 인공위성 계획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의문투성이인 북·미 3차 고위급 회담
여기서부터 또 다른 의문이 시작된다. 지난해 12월14일이면 10월24~25일 제네바에서 있었던 북·미 2차 고위급 회담으로부터 한 달 보름 정도 지난 시점이다. 당시 2차 고위급 회담에서 접점 마련에 실패한 양측은 김정일 위원장 사망 직전 3차 회담 개최를 위한 실무회담을 열어 식량 지원과 비핵화 문제에서 진전을 이루기로 합의했다. 비록 광명성 발사 계획이 별도 채널로 통보됐다고 하지만, 이런 중대한 문제가 제기됐음에도 북·미 회담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이다. 물론 미국 측은 우려를 표명했다고 하지만, 그동안의 예로 볼 때 단순히 우려 수준에서 그칠 문제가 아닐 터이다.
이어 2월23~24일 베이징에서 3차 고위급 회담이 열려 북·미 간에 극적 합의가 이뤄졌다. 미국은 24만t의 영양식품을 제공하고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및 우라늄 농축 활동을 포함한 영변에서의 핵 활동을 유예하며, 이를 검증하고 감시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복귀에 동의했다는 것이다.
이 3차 고위급 회담에 이르면 의문은 더욱 증폭된다. 이 회담의 여러 가지 점이 그동안의 북·미 회담과 달랐다. < 시사IN > 이 외교 소식통을 통해 취재한 바에 따르면, 먼저 북한 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과 글린 데이비스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 사이의 정식 회담(2월23~24일)에 앞서 2월15일에서 18일 사이에 막전 실무회담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실질적인 논의가 대부분 이뤄졌다고 하는데 이런 과정부터 특이하다. 합의 내용이나 그 이후의 진행 경과 등도 의문투성이다. 공식 발표문상으로는 미국이 북한에 24만t 규모의 영양식을 지원한다고 돼 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5만t 많은 29만t의 밀이나 밀가루를 지원하기로 이면 합의가 이뤄졌다. 3차 회담에 앞서 북한은 30만t을 요구했고 미국은 24만t을 주장했는데 언론 발표와 달리 실제로 북한의 요구를 거의 다 들어준 셈이다. 그래놓고도 정작 그동안 북·미 합의에서 단골로 사용해온 '모든 미사일'이라는 표현은 빠졌다. 최근 알려진 바에 따르면 미국은 당시 회담에서 인공위성 발사 계획을 반대하기로 했으나 자신의 뜻을 관철하지는 못한 것이다.
그 다음, 또 하나 주목할 게 바로 6자회담 시기다. 6월 중순으로 잡았다고 하는데, 물론 미국 대선 스케줄을 고려한 측면도 있지만, 광명성 3호 발사 파동을 미리 예상하고 이렇게 멀리 잡은 것 같기도 하다. 중국에서 발행하는 < 환구시보(環球時報) > 영문판인 < 글로벌 타임스 > 역시 3월20일자에서 비슷한 시각을 보였다. 즉 북한이 광명성 3호를 발사할 경우 "미국이 초기에는 식량 지원 의사를 철회하는 등 긴장 국면이 되겠지만 시간이 좀 지나면 이번 사안으로 발생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양측 간 대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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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Photo 미국의 핵과학자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가 2010년 11월 북한을 방문한 후 질문에 답하고 있다.
| 그 다음의 과정도 통상적인 북·미 합의와 매우 달랐다. 2월24일 베이징에서 회담을 마쳤는데 통상 그 자리에서 회담 결과를 발표해야 함에도 이번에는 각자 본국으로 돌아가 닷새나 지난 2월29일 회담 결과를 각각 발표했다. 합의 내용을 둘러싸고 그만큼 진통이 있었음을 의미하는 듯하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회담이었던 셈이다. 북한이 인공위성 발사 계획을 미리 통보한 상태에서 열렸음에도 이를 저지하지도 못했고, 미국은 대외적인 체면만 겨우 유지했을 뿐, 내용상으로는 북한에 큰 폭으로 양보했다. 미국이 갑자기 마음씨 좋은 '엉클 샘'이라도 됐단 말인가?
미국을 초조하게 만드는 북한 UEP
미국은 왜 이렇게 엉터리 합의를 했을까. 바로 그 핵심에 북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UEP) 문제가 있다. "지금 미국의 관심은 오로지 UEP다. 북한도 이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북·미 관계에 정통한 서울의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의 초조감이야말로 현재 북·미 간에 벌어지고 있는 미스터리를 이해하게 하는 단서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지금 미국의 최대 관심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하루바삐 IAEA 사찰단을 보내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다행히 북한도 보여주겠다고 하니 이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식량 지원은 그 '참관 비용'인 셈이다. 광명성 발사 계획? '잔소리'는 하지만 거기까지 신경 쓰기 어렵다. 자칫 이걸 물고 늘어졌다가 판이 깨지면 오히려 낭패다. 북한에 우라늄 농축의 시간만 벌어줄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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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오아이-RFA 제공 광명성 3호 발사 장소로 예상되는 평안북도 동창리 로켓 발사대.
| 핵을 전면에 내세운 북한 외교의 시동?
북한의 우라늄 농축 수준이 어떠하기에 미국이 이렇게 급해졌을까.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은 그동안 북한 우라늄 농축에 대해 주시해왔지만 실체에는 확신을 갖지 못했다. 그런데 북한이 2010년 11월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핵과학자인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를 초청해 결정적 카드를 꺼내 보였다. 당시 해커가 영변에서 목격한 북한 우라늄 농축 수준은 놀랄 만한 것이었다. 과거에 추정했던 것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P2 타입의 원심분리기 2000대가 가동 준비에 들어가 있었다. 해커 박사는 보여주기용으로 2000대가 있으면 또 다른 곳에 2000대 이상이 있으리라 추정했다. 이 정도면 최소한 1년에 핵무기 4개 분량에 해당하는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다. 북한이 과거 8개 정도의 핵무기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는 게 일반적 평가라면, 2006년과 2009년 핵실험을 하면서 2개를 사용해 6개가 남은 상태다. 여기에 원심분리기를 가동해 핵물질을 생산하면 2012년까지 북한의 추정 핵무기 수는 20개 정도 된다. 이 정도면 2격 능력(상대의 반격에서 살아남아 다시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어, 공세적 핵무장 국가가 된다는 이론적 추론이 가능하다( < 시사IN > 제170호 '북한 핵무기의 불편한 진실' 참조).
당시만 해도 한쪽에서는 정말 그럴까 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심각성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앞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의 핵 능력에 대해 설마 하던 미국이 비공식 채널로 중국에 조회한 결과, 중국도 북한이 이미 상당 수준의 능력을 갖췄다고 본다는 점을 확인했다"라는 것이다.
북한 핵 능력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도 논의된 바 있다. 국내의 원로 대북사업자 ㄱ씨는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이 났을 때 오랫동안 파트너 관계를 유지해온 재일동포 사업가로부터 급히 일본을 다녀가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북한 권력 내부에 정통한 인물로, 김정일 위원장 사망 직후 평양을 다녀왔다. 이 재일동포로부터 북한이 이미 '소형 핵탄두를 완성해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는 수준'의 핵 능력을 갖췄다는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이 얘기를 국회의 한 모임에서 했는데,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김동성 의원이 듣고 지난해 6월13일 김관진 국방부 장관에게 진위를 물었다. 김 장관의 대답인즉, "북한은 이미 2006년과 2009년 두 차례 핵실험을 했다. 다른 나라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핵탄두의 소형화와 경량화에 성공했을 가능성이 높다"라는 것이었다. 한국 국방부 장관이 국회에서 북한 핵무기의 소형화 성공 가능성을 공식 확인하기에 이른 것이다. ㄱ씨는 "그 뒤로 군 관계자들이 심심찮게 연락해오는데, 그중 한 인사로부터 일본 정부 역시 그 내용을 상세히 파악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라고 말했다. 따라서 과거에는 한국이 미국 발목을 잡으면 미국 정부가 주저앉곤 했지만, 지금 미국은 한국을 신경 쓸 처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앞의 외교 소식통은 "미국의 1차적 관심은 두 눈으로 북한의 핵 능력을 확인하는 것, 다음은 어떻게 해서든 대외적 확산을 막고, 그 수준에서 동결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이 시점에서 자신들의 핵시설을 공개하겠다고 나선 걸까. 지난번 3차 고위급 회담에서 미국이 양보한 것은 북한이 IAEA 사찰단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UEP 시설을 보여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앞서의 외교 소식통 평가는 주목할 만하다. 북한이 이미 자신들의 핵 시설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영변이든 어디든 미국과 IAEA에 자신들의 시설을 보여줘 겁을 먹게 하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최근 몇몇 보도를 통해서도, 북한이 핵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새로운 대외정책 및 대미 교섭을 추구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징후를 읽을 수 있다. 3월18일자 < 산케이 신문 > 은 북한에 정통한 소식통의 말을 빌려 "북한 지도층 사이에 최근 '핵'을 전면으로 내세우는 강경한 외교 사상이 확산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지적했다. 김정일 위원장 사망 직후 평양을 방문해 고위급 인사들을 두루 접했다는 이 소식통은 "북한 권력층 내부에 '김정은 대장은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혁명 유산인 핵을 더욱 활용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더욱 적극적으로 핵을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들이 나돌고 있다"라고 전했다. < 산케이 신문 > 는 또 이 소식통의 말을 빌려 "핵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김씨 왕조와 오랜 관계를 맺어오면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현재 북한 김정은 체제 내부에 확산되고 있는 강경한 외교 사상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미국 워싱턴에서는 얼마 전 시러큐스 대학이 주최한 세미나 참석차 방미한 이용호 북한 외무성 부상의 대담한 발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주제 발표 등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이뤄지면 핵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한국에 핵우산을 씌워주는 것처럼 우리도 핵우산에 포함시켜주면 핵을 개발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고 한다. 1992년 북·미 고위급 회담의 역사적 첫 테이프를 끊은 김용순 비서와 아널드 캔터 미국 국무부 차관보 회담에서 김 비서가 '동북아에서 북한과 미국이 동맹을 맺어 세력 균형을 이룩하자'라는 파격적 제안을 해 미국을 놀라게 했던 광경을 연상시킨다.
최근 워싱턴에서는 북한의 '새로운 협상전략' 또는 '통 큰 담판'이 화제가 되고 있다고 한다. 즉, 북한과 미국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먼저 구축하고 나서 핵 문제를 해결하자는 '선(先)관계 개선, 후(後)핵문제 해결' 원칙인 셈이다. 김용순 비서가 1992년에 북·미 동맹 얘기를 꺼냈을 때 북한에는 구상만 있었지, 미국을 압박할 힘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힘을 갖기 시작한 것 같다는 분석이다. "지금 북·미 관계를 누가 주도하고 있는가. 미국인가 북한인가. 이미 관계가 역전되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앞서의 외교 소식통이 한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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