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통일교육에 대한 성찰 Ⅳ 서독의 ‘정치교육․평화교육’ 속에 숨은 목표
변준희
한국의 통일교육은 국내외 정세변화와 정부의 통일정책, 북한을 보는 관점의 변화에 따라 그 명칭을 달리해 왔다. 남북 분단과 전쟁을 경험하며 누적되어 온 불신과 적대감으로 인해, 1954년~1986년(제1~4차 교육과정)까지 반공, 멸공, 승공을 외치는 ‘반공교육’이 이루어지다가, 1987년(제5차 교육 과정)에 들어서야 ‘통일안보교육’을 시작하게 된다. 비로소 북한이 위협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함께 살아야 할 한 민족임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통일교육’이라는 명칭은 1992년(제6차 교육과정)부터 사용되었다. 그리고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 시기에는 통일교육 내용체계 속에 그동안의 불신과 적대감을 해소하기 위한 화해와 협력, 평화적 요소가 상당 부분 수용되었다. 하지만 안보적 측면을 우려한 이명박정부 집권 후, 2009년(제7차 교육과정)부터는 ‘통일교육’에서 다시 안보적인 요소가 강화되었다. 2013년 박근혜정부의 통일․대북정책인「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과연 통일교육의 내용체계에 있어서 어떤 측면의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가 궁금해진다.
1972년, 서독은 ‘동서독 기본조약(양 독일 관계의 기초에 관한 조약)’을 맺었는데, 이 조약이 의미 있는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처음으로 쌍방이 상대편이 별개 국가라는 것을 실질적으로 인정하여, 사실상 1민족 2국가를 승인했기 때문이다. 이 조약 체결 이후 서독은 직접적으로 ‘통일교육’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공개적으로 통일교육을 시키지도 않았다. 대신 ‘정치교육’과 ‘평화교육’이라는 큰 테두리의 하위영역으로 통일과 관련 있는 문제를 녹여내어 통합적인 내용들을 다루었다. 서독은 가까운 장래에 통일이 되지 않을 거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장기적인 교육 목표를 설정하여 큰 테두리 안에서 통일 이전과 통일 과정, 그리고 통일 후 적응교육을 포괄하는 내용을 가르치는 통합적인 교육을 실시했던 것이다. 즉, 서독은 ‘통일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공개적인 교육을 시키지는 않았지만, 변함없이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통일을 염원하며 실제적인 통일교육에 힘써 왔던 것이다(박봉정, 2001: 35). 그렇다면 통일교육의 일환으로 실시되었던 정치교육과 평화교육은 어떤 것이었을까?
서독의 ‘정치교육’은 다른 말로 ‘민주시민교육’이라고 일컬어진다. 독일의 정치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50년대였다. 나치 정권이 자행한 엄청난 학살과 45년 제2차 세계대전 후 전범·패전국이란 멍에를 갖게 된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암묵적 동의가 이 같은 참담한 역사를 남겼다는 공감대와 함께 이성과 양심에 따른 정치적 결정 능력을 배울 정치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서독은 정치교육을 통해 시민들이 ‘정치적인 사안을 이해’하고, 이에 대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며, ‘정치 참여의 자질을 육성’하여 이를 토대로 ‘정치 참여를 통한 사회의 민주화’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통일 관련 정치교육의 주요 내용에서 주목할 만 한 점은 평화공존을 바탕으로 한 동방정책에 따라 독일 내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함을 인정한다는 합리론에 기초하여 이데올로기에 의한 대립을 삼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제도적으로는 다양한 정치교육 담당기관과 단체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하면서도 주요 정치교육기관의 예산과 업무에서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보장되어, 특정 이념에 근거한 교육이 아닌 보편적 원칙에 입각한 다양한 정치교육이 이루어지도록 하였다(박광기, 2010: 114).
다음으로, 서독이 정치교육과 함께 간접적인 통일교육 방법으로 실시했던 것이 바로 ‘평화교육’이다. 평화교육을 위한 교과목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여러 교과목에서 평화 교육론이 다루어졌는데, 그 형태는 관념적(민족적) 차원, 개인적 차원, 사회적 차원으로 구분하여 볼 수 있다(윤응진, 2002: 339). 첫째, 관념적(민족적) 차원의 평화교육이란 나라 간의 갈등으로 인한 전쟁을 막고 평화라는 인류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민족 간의 이해 증진’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둘째, 개인적 차원의 평화교육이란 이웃과 친구와의 관계 속에서 평화적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도록 새로운 행동방식들, 태도들, 그리고 갈등을 극복할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셋째, 사회적 차원의 평화교육은 사회의 구조적, 제도적 폭력을 개선할 수 있도록 사회 비판의식을 형성하고 정치적 참여를 통해 이를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평화적인 관점과 문제해결능력을 기르기 위해 이루어졌던 평화교육은 서독에서 통일을 준비하는 또 하나의 통로였다. 서두에 말했듯이 통일교육이 어떤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통일교육의 대략적 내용과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서독이 통일문제를 ‘정치교육(민주시민교육)’과 ‘평화교육’의 큰 틀에서 다루었다는 점은 통일문제를 접근하는 데 있어서 ‘어떻게(how)’, 즉 방법론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는 ‘통일교육’은 방법론적인 부분보다는 ‘왜(why)', 즉 통일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설득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통일교육지침서에 제시된 통일교육 내용체계에서도 방법론적인 부분은 정부의 통일정책을 설명하는 데에 그치고 있고, 통일을 위한 과제로 제시된 것 또한 개인적 차원이 아닌 국가적, 사회적 차원의 것들이다. 우리의 통일논의는 여전히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데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학교통일교육에서 평화교육적 요소를 보완하는 것은 통일 문제를 민족적인 차원으로 보기 이전에 개인적 차원의 일상생활로 끌어들여 출발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통일교육 내용체계 속에 가장 시급히 보완되어야 할 부분은 개인적 차원의 평화교육, 즉 이웃과 친구와의 관계 속에서의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행동방식과 태도, 갈등 극복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민주시민의식을 형성하기 위한 정치교육도 내가 처한 사회의 문제를 올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우리사회의 다양한 사안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고, 이성적인 판단 능력을 바탕으로, 정치 참여를 통한 변혁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결국 민주적인 통일을 이루는 과정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될 것이다.
통일은 ‘일시적 사건’이 아니라 시간이 필요한 ‘과정’이다. 통일은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삶의 ‘실제적’인 문제다. 통일 문제가 추상적인 거대담론이 된다면 아무리 통일의 당위성을 외쳐도 학생들에겐 그것이 삶과 동떨어진 문제로 느껴질 것이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막연할 것이다. 따라서 이웃 간의 문제를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도록 하는 것은 통일교육의 내용체계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어야 한다. 휴전선이 사라지기기도 전에 만나게 될 북한이탈주민들과 통일한국에서 만나게 될 북한 사람들은 모두 우리의 ‘이웃’으로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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