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기억
김동진 평화문화연구원 원장 한신대학교 외래교수
2013년 7월 27일 한반도는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이했다. 남한과 북한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 등 전 세계 참전국들에서 아직 끝나지 않은 6.25 전쟁을 잊지 않기 위한 다양한 행사들이 진행되었다. 어느 사회에서나 전쟁의 기억은 집단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전쟁을 잊지 않는다는 말은 내가 어떤 집단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잊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우리 집단과 전쟁을 치룬 다른 집단의 적정체성을 잊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정전 협정이 맺어진 이래, 지난 60년 동안 우리는 전쟁이 시작된 6월 25일과 전쟁이 중단된 7월 27일, 다시 한 번 우리와 그들의 정체성을 상기하는 연례행사를 치러 왔다. 안타깝게도 휴전 이후 남한과 북한의 정부는 6.25 전쟁의 기억과 상대를 향한 적정체성을 자신들의 독재체제를 정당화하는데 활용했다. 남북 주민 모두에게 이런 정체성의 정치는 너무나도 강렬했다. 1980년대 말부터 세계적으로 냉전의 종식을 목격하고, 남한 사회는 민주화를 이룩했으며,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가 체결되었지만, 서로를 향한 적정체성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역사적인 2000년 남북정상회담과 6.15 공동선언을 통해 남북 주민들은 개성공단, 금강산 사업 등 각종 경제, 사회, 문화 교류를 통한 평화공존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도 잠시, 남한 사회에서는 남남갈등이라는 새로운 용어가 등장할 만큼 상대를 향한 적정체성이 해소되지 않고 계속해서 되살아났다. 북한은 남북 사이의 평화공존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의 질서 가운데 생존의 위협을 느끼면서 결국 핵무기를 선택하고 말았다. 북한의 핵개발 이후 남한에서는 전쟁의 기억을 되찾으려는 시도가 더욱 거세졌다. 특히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가진 이명박 정부가 등장하면서, 마치 그동안 평화공존을 즐거워하며 이를 누렸던 사람들에게 보복이라도 하듯, 전쟁이 아닌 평화를 기억하는 사람에게 북한의 적정체성이 덧입혀지기 시작했다. ‘나의 친구가 아니면 적’이라는 식의 사회 양극화가 진행되면서, 종북 논란이 그칠 줄 모르고 터져 나왔다. 초중고생, 대학생,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병영체험 캠프 등 평화의 기억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전쟁의 기억을 불어 넣으려는 시도도 계속되고 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처럼, 그동안 평화공존의 기억은 나태하고 나약하며 지워야만 하는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새로 출범한 박근혜 정부의 기조와도 일단 잘 맞아 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부는 ‘청와대 하늘을 밝히는 16(또는 17)개의 별’ 혹은 ‘남한 식 선군정치’ 등과 같은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장성 출신 인사들을 중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장성 출신 인사들이 남북 당국 간 협상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보도가 계속되어 왔다는 점이다. 가장 최근으로는 개성공단 정상화를 위한 실무회담 관련 보도를 수 있다. 회담은 7월 6일부터 25일까지 6차례에 걸쳐 진행되었지만, 개성공단 중단 책임소재 문제 및 재발방지 문제 등에 대해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결국 결렬되었다. 지난 7월 28일 통일부 장관은 ‘최후통첩’ 성격의 마지막 회담을 제의하면서, 북한이 이에 응하지 않으면 중대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언급을 해 놓은 상황이다. 이렇게 6차례에 걸친 회담에도 불구하고 서로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두 차례 회담 이후 남한의 실무회담 단장이 교체된 배경이 새삼 주목받았다. 몇몇 언론은 전 남북실무회담 단장이 교체된 이유가 그의 ‘고압적이지 않은 태도’ 때문이었다고 보도했다. 회담장에서 웃으면서 덕담을 한 단장의 태도가 국정원을 통해 보고되자 장성 출신 인사들이 정책을 주도하는 청와대에서 회담대표를 교체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새로 교체된 대표는 회의실에서 상대와 악수도 하지 않는 ‘강경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보도가 사실이라면 남북 당국 협상은 통일부 실무자가 대표로 참여하더라도 사실상 외교적 ‘협상’이라기보다는 군인이 주도하는 총 없는 ‘전투’에 가까울 수 있다. 군인은 전쟁에서 승리해야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언제나 평화가 아니라 전쟁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따라서 이들이 주도하는 당국 간 협상은 외교적이라기보다는 전투적일 수밖에 없다. 상대에게 미소조차 보일 수 없는 엄격한 자세로 반드시 싸워 이겨야 하는 것이다. 전쟁이 중단된 지 6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계속해서 전쟁을 상기하고 전쟁 속에서 살아갈 것을 요구받고 있다.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분명 한동안 평화공존기를 경험했음에도, 이는 정전 60년이라는 한 마디로 덮여 버리고 있다. 서로 미소 지으며 이야기하던 평화의 기억은 잘못된 일탈행위인 것처럼 지워져가고 있다. 이는 어쩌면 그동안 우리가 전쟁보다는 평화에 대한 준비가 미흡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정말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평화가 무엇인지를 알고 평화를 제대로 누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물론 전쟁의 아픔과 공포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아픔과 공포 속에 계속해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전쟁의 아픔과 공포 속에 처하지 않도록 전쟁의 기억을 평화의 경험과 기억으로 바꾸려 노력해야 한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공포를 깨달은 세계인들은 전쟁의 기억 속에 머물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를 넘어 세계 평화를 만들고 평화의 경험과 기억을 확산시키려는 의도로 유엔을 창설했다. 정전 60주년을 맞는 오늘, 유엔 창설의 정신을 담은 유엔헌장 서문을 살펴보며, 전쟁이 아니라 남북 간 평화의 기억을 되살려봄이 어떠할까?
“우리 유엔의 사람들은 우리 일생 중에 두 번이나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인류에 가져온 전쟁의 불행에서 다음 세대를 구하고, 기본적 인권, 인간의 존엄 및 가치, 남녀 및 대소 각국의 평등권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하며, 정의와 조약 및 기타 국제법의 연원으로부터 발생하는 의무에 대한 존중이 계속 유지될 수 있는 조건을 확립하며, 더 큰 자유 속에서 사회적 진보와 생활수준의 향상을 촉진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관용을 실천하고 선량한 이웃으로서 상호간 평화롭게 같이 생활하며,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하여 우리들의 힘을 합하며, 공동이익을 위한 경우 이외에는 무력을 사용하지 아니한다는 것을, 원칙의 수락과 방법의 설정에 의하여 보장하고, 모든 사람의 경제적 및 사회적 발전을 촉진하기 위하여 국제기관을 이용한다는 것을 결의하면서...” -유엔헌장 서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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