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자회담은 실패할 것"
요한갈퉁, 남북평화재단 강연회서 "한반도 한민족 통일이 대안"
2007년 10월 17일 (수) 00:03:36 박현범 기자 tongil@tongilnews.com
'현대 평화학, 평화 연구의 창시자'로 불리는 노르웨이 출신 요한 갈퉁(Johan Galtung) 교수.
'구조적 폭력'과 '적극적 평화'의 개념을 소개하는 등 세계적 석학일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의 분쟁 지역을 찾아다니며 평화적 해결로 중재하는 활동을 해온 요한 갈퉁 교수는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6자회담에 대해 이례적으로 '비관적 전망'을 내놓고, 6자회담을 대신할 대안으로 '한반도에서의 한민족 통일'을 제시했다.
남북평화재단이 마련한 초청강연회가 열린 16일 오후 7시,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 자리한 120여명의 청중은 2시간여 동안, 다양한 경험과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극단적 표현과 유머 그리고 생각지 못했던 전망을 내놓는 요한 갈퉁 교수의 강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미국 관료들의 '사보타지'에 의해서 6자회담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견'한 요한 갈퉁 교수는 그 대안으로 '한반도 한민족의 통일'을 제시하고, 이를 이루는 관건적 요소로 '남한의 두 상대'를 지적했다.
그는 "한민족이 통일되는 그 과제가 6자회담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길"이라며 "물론 그것은 남한 내부의 역동적 관계에 달려 있다. 남한의 두 상대는 친미와 전반적으로 북한과 협조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요한 갈퉁 교수의 이같은 전망은 그가 분석한 미국이란 나라의 특성과 속성에 근거하고 있다.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이 다 실현될 것이라 믿지 않는게 좋을 것이다"
요한 갈퉁 교수는 과거 미국과 소련이 터키와 쿠바에 핵미사일을 놓고 대치했던 상황을 설명하면서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미국의 특성과 속성에 대해 말했다.
"케네디는 기본적으로 평화를 추구하는 방향이었는데, 터키에 있는 미국의 미사일을 제거해야 한다고 국무부에 얘기했고, 국무부가 이를 받아들여, 핵무기 철수에 반대하는 터키 정부를 설득해 철수하게 됐다. 그런데 62년 쿠바사태에 들어서, 미국이 소련을 향해서 미사일을 배치한 것처럼 소련도 미국을 향해서 핵미사일을 배치한다고 했다. 케네디는 '이게 무슨 말이냐? 핵무기를 철수해서 문제될 것이 없다'고 호언장담했다. 방안에 침묵이 흘렀다. 얼마 후에 방안에서 참모가 '사실 철수하지 않았다'고 케내디에게 보고했다. 케내디는 당연히 분노했고, 당신이 싸워야 할 것은 소련이 아니라 자기 행정부의 자기 관료라는 것을 알게 됐다."
요한 갈퉁 교수는 "여기서 중요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관료들이 대통령의 명령을 거부한 것"이라며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이 다 실현될 것이라 믿지 않는게 좋을 것"이라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이어 미국과 소련이 비밀협상을 통해 핵미사일을 철수하고, 이 사실이 30여년이 지난 1990년대에 밝혀진 것을 두고, 이는 미국이 스스로를 '보통국가'라 여기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보통국가에서는 상식적으로 내 미사일을 빼면 너도 빼고, 이런 상식적 과정을 상상할 수 있지만, 미국은 스스로를 보통국가라고 생각하지 않고, 모든 국가의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협상이라는 말은 라틴말의 어원을 보더라도 주고 받는 것인데, 스스로를 보통국가라 여기지 않는 나라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요한 갈퉁 교수는 미국이 이같은 인식 아래 타국가를 '당근'과 '채찍'으로 대하는 것은 "성경에 대한 매우 고지식한 해석"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했다.
그는 "미국이 바로 하느님이 전제하고 이끌어 주는 나라라는 인식"때문이라며 "부시는 자기 스스로 하느님과 직접적 관계가 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나는 하느님께서 부시를 생각할 만큼 잘못된 입맛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풍자했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협상의 믿을 만한 상대가 아니"고 "협상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6자회담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 요한 갈퉁 교수의 주장이다. 물론 요한 갈퉁 교수는 이같은 자신의 주장을 모두 펼친 뒤, "내말이 틀리기를 바란다"고 희망했다.
"북한의 변화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온다"
▲ 이날 강연회에는 120여명의 청중이 자리해 강연장을 가득 메웠다. [사진 - 통일뉴스 박현범 기자]
요한 갈퉁 교수는 북한이 곧 변화할 것이고, 새로이 갈 길은 '중국과 같은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김일성종합대학에 대해서 "굉장한 학문 수준"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하면서, "북한의 변화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올 것"으로 전망했다.
이어 "그 변화는 북한의 지식을 선도하는 그룹과 실무관료들의 결합일 것"이라며 "중국의 전철을 안 밟을 것인가?... 국가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체제에서 자본주의의 정글을 헤쳐 나가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요한 갈퉁 교수는 향후 5년에서 10년 사이 북한이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룰 것으로 내다보고, 현재의 남북경협이 이를 위한 '기초공사'인 것으로 여겼다.
그는 "중국인 지식층이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이끌어가 듯, 북한도 지식인층이 새로운 방향을 잡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며 "제가 한국의 정치인이라면 북한의 학자들을 최대한 불러서 교류하고, 남한의 학생들을 최대한 북한에 보내 공부하게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어 "북한에 굉장히 많은 고위관료를 만났는데, 교양과 지식이 있고, 마치 한국사람과 얘기하는 느낌이다. 근데 한국사람과 얘기하면 미국사람과 얘기하는 느낌"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한편, 요한 갈퉁 교수는 '북한이 변할 것'이라는 예측과 더불어 "남한은 남한내에서 훨씬 급격한 변화에 직면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북의 변화에 남이 준비돼 있나?"고 되묻고 "남한내 동서갈등이 이 문제에서 어려움을 자초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국가의 통일'이 그들이 꿈을 죽였다"
▲ 요한 갈퉁 교수는 2시간여 동안 청중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사진 - 통일뉴스 박현범 기자]
1972년부터 한반도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요한 갈퉁 교수는 '국가의 통일'이 아닌 '민족의 통일'을 강조했다.
그는 남한에는 통일과 관련해 두 개의 의견으로 갈려있다면서 "하나는 '민족의 통일'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의 통일'이다"고 말했다.
남북한의 사람들을 만나면 먼저 묻는 것이 "어떤 통일을 말씀하는 것이냐"라며, 이 문제를 상당히 강조한 요한 갈퉁 교수는 독일통일의 사례를 들어 그 이유를 설명했다.
"(동독사람들)그때 그 사람들이 '우리가 국민이다'라고 슬로건으로 얘기했다. 이 슬로건이 나온 얼마 후에 '우리는 한국민이다'고 말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우리가 하나의 독일 민족'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 말은 곧 동독 국민들이 '민족의 통일'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슬로건은 '하나의 국가'를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곧 서독에 의한 동독의 식민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동독에 가면 인구가 줄어들었는데, 젊은 사람들이 떠나고 '텅빈 나라'가 됐다.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동독은 많은 잘못을 했지만, 그들은 한 가지 꿈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도 많은 잘못을 하고 있지만 원하는 것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국가의 통일'이라는 것이 그들의 꿈을 죽였다."
1995년 에콰도르와 페루 등 분쟁지역에서 중재자 역할을 한 바 있는 요한 갈퉁 교수는 'NLL문제'와 관련해 "나는 선을 긋지 말고, 공유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것이 이뤄져서 98년에는 평화조약의 열매를 맺는 결과를 얻었다"며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경제자유지역이 형성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소개했다.
"양쪽으로 대치한 군대가 멀리 떨어져 나감에 따라 가운데는 한쪽 군대에 의한 침략이 가능하지 않은 안전지대로 변화해 갔다"는 것이다. 그는 비무장지대(DMZ)에도 "생태를 파괴하지 않는 원칙"으로 '경제자유특구'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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